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
슈테파니 츠바이크 지음, 안영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혼은커녕 아무런 정보도 담겨 있지 않을 듯한 그 이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지... 예컨대 '슈테파니 츠바이크'란 이름은 마치 낡은 고무 타이어처럼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 들게 마련이어서 그녀가 쓰는 글이란 글은 언제나 유머와 감성을 모두 제거한 채 칙칙하고 우울한 느낌만 전달할 것 같잖아. 반면에 빌 브라이슨은 어때?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마치 대문자 비(B)를 닮은 퉁퉁한 몸매에 털털하고 인상 좋은 남자일 것 같지? 게다가 그가 쓰는 글은 모두 재미있고 유쾌할 것만 같고. 웃기는 건 한 사람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사람들은 이름 하나만으로 많은 걸 유추한다는 거야. 때로는 황당하게 때로는 제대로.

 

"나는 두 귀로 그 이름을 흘러들어오게 했다. 내게 얼마나 꼭 맞는 이름인가. 왕비의 이름에 걸맞고 시녀에게는 귀족신분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모든 의미를 망라하는 이름이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사실은 나 역시 아주 오랫동안 이런 아름다운 치음(齒音)을 원했음을 알았다. "시시," 내 마음은 환희로 가르랑거렷다." (p.50)

 

그렇다. 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쓴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는 고양이 시시가 주인공이다. 작가가 '슈테판 츠바이크'인데 '슈테파니 츠바이크'라고 잘못 쓴 게 아니냐고? 그럴 줄 알았다. 그 얘기가 왜 안 나오나 생각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 평전>을 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지. 반면에 슈테파니 츠바이크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년생활을 보냈고 작가 겸 극작가로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93년에는 독일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

 

소설의 주인공인 시시는 처음에 살던 집에서 어느 날 탈출을 감행한다. 이유인 즉 고양이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집주인이 자신의 주말농장 창고에 쥐구멍이 있는 걸 본 후 쥐를 잡기 위해 시시를 그 창고로 보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시시는 정신과 의사인 율리아의 집이 맘에 들었고 순진한 율리아를 자신의 '양녀'로 삼기로 했다. 비를 맞은 처량한 모습으로 시시는 율리아를 자극했고 애완동물이라곤 길러본 적 없는 율리아도 시시의 연기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율리아와 시시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녀가 자신의 환자를 치료할 때에도 둘은 환상의 콤비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시중을 들자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태생이 고매한 우리 시암 고양이는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생쥐로 배를 채우는 한심한 도둑고양이는 아닌 것이다." (p.14)

 

그러던 어느 날 율리아가 자신의 환자였던 슈테판 베르크를 맘에 두게 되었고 슈테판은 그의 동생 게오르그와 함께 율리아의 집에 들러 카드놀이를 하거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무렵 시시는 수려한 외모의 수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다. 율리아의 눈을 피해 수고양이와 사랑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던 어느 날 밤, 시시가 사라졌다는 불안감에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의 불을 제대로 끄지 않았던 탓에 화재가 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자고 있던 율리아를 시시는 다급하게 깨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입에 올리고, 수없이 한숨짓고 노래하는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이란 싱싱한 연어 한 토막만도 못 하고 몇 차례 후려갈겨 떠나보낼 정도의 가치만 부여하고 싶다. 아침 여명 속에서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조차 한기와 갈증과 허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따뜻한 집과 율리아의 따스한 체온이 어찌나 그립던지 애처로운 소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p.125)

 

시시의 무용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인 척 가장해 율리아와 가까워진 남자가 율리아가 없는 틈을 노려 집안의 보석을 훔쳐가려 했을 때 시시는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고 하여 남자를 쫓아내기도 했다. 그것도 임신한 몸으로 말이다. 또한 율리아가 시시를 위해 출산침대를 만들다가 망치에 맞아 다리를 접질렸을 때도 시시와 슈테판이 그녀를 간호했다.

 

"만일 율리아가 의사가 되는 대신 외교관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매일 세계대전을 치뤘어야 했을 것이다. 바보 율리아는 미모사처럼 우아를 떨고, 끔찍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데다 문제는 수다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246)

 

시시와 율리아의 좌충우돌 동거기(同居記)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은 똑똑하고 우아하며 사랑스러운 시암 고양이 시시의 관점에서 전개되지만 인간과 고양이의 교감이 마치 인간 대 인간의 우정처럼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내가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의 이름에서 독자가 받는 인상은 무척이나 차갑고 거친 느낌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까칠한 고양이 시시의 독설과 그 매력에 푹 빠져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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