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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고민에 답하다
곽정은 지음 / 달 / 2016년 3월
평점 :
잘 훈련된 성직자나 심리치료사는 냉정하거나 냉정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적당한 조언을 듣고자 찾아 왔을 때 그 사람의 말에 일일이 대응하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한껏 위하는 척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도 상담에 있어서는 초보자이거나 전문가가 될 자질이 엿보이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다. 정신적으로 나약해진 사람에게 하는 섣부른 조언이나 서푼어치의 동정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담을 요청해 온 사람이 절실히 원하는 바는 대개 전문가의 현명한 조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람이라면 대개 지금 시점에서 어떤 조언이 적절하다거나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줄 만한 값싼 위로나 동정을 구걸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또는 지금의 정신적 고통을 잠시 잊게 하거나 영원히 잊을 수 있도록 돕는 약품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바랄지도 모른다. 어떤 상태가 되었든 현명한 조언이 그 사람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현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므로 섣부른 조언은 '너는 나를 모른다'는 반감만 불러오게 된다.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곽정은의 신작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은 연애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그에 대한 작가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연애 전문 에디터'로도 불리는 작가는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하면서 연애에 관한 많은 명언 및 어록으로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는 방송에서라면 차마 말로 하기 어려웠을 듯한 내용의 조언도 이 책에서는 거침없이 쓰고 있다. 짧지만 이미 겪어보았던 결혼 생활의 경험이 그녀를 더 원숙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 남자를 향해 있던 마음속의 안테나를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려야 할 시점이에요. 그를 비난하거나 집착의 대상으로 삼는 건 지금 당신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요. 내가 정말로 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인지, 외롭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해요. 그리고 답을 내야 해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신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p.102)
누구나 한번쯤은 다른 사람의 상담을 받아본 적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상담을 해준 적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알게된 상담이란 누군가로부터 조언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정답을 상대방으로부터 듣고 기뻐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조차도 알지 못햇던 정답을 상대방이 콕 찔러 지적해 줌으로써 내 마음이 함께 공명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상담을 마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상대방이 아무리 유능한 상담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일방적인 조언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거나 내가 생각했던 정답 언저리에서만 뱅뱅 맴을 돌 뿐 핵심을 찌르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면 그 상담은 이미 실패한 상담일 뿐이다.
이 책에 수록된 고민상담은 대개 연애를 시작하기 전의 만남에서부터 만남의 과정에서의 다툼이나 트러블, 이별을 결심하기 전의 고민이나 이별 후의 정신적 고통 등 다양하지만 결혼 후의 고민도 간혹 눈에 띈다. 연애나 결혼 등 사랑에 이르는 과정만큼 복잡한 게 또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70억 명의 지구인들이 70억 개의 개성을 가진 채 태어났기에 사랑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하게도 되고,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조언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갈팡질팡 나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아리송한 느낌이 들게 한다.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하면 지금까지 쓰인 소설의 주제가 대부분 사랑이고 우리가 하는 상담의 대부분을 사랑과 연애가 차지하고 있을까.
"제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두 사람이 만든 세계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는 일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일정하게 서로 공유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고, 또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부분도 있어야 하죠. 공동의 목표도 있어야 하지만, 나만의 즐거움이란 것도 필요할 것이고요." (p.251)
사랑의 문제는 단순히 사랑 안에서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삶의 제반 문제와 연결되어 끝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삶이든 사랑이든 결국 누군가의 삶을 경청하거나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이 이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도 이미 자신의 내면에 구체적으로 정립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몫이다. 사랑에는 오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가장 필요할지도 모른다. '잘생긴 사람은 누구나 인물값을 한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처럼 '겉모습보다는 마음이 먼저'라는 충고를 결혼 전에는 백날 얘기해줘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사랑도 어쩌면 뒤늦게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아닌지... 그렇다면 일단 저질러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