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이후로 권력의 지형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 대표적이었던 게 아마도 '어버이 연합'의 후원금과 청와대와 국정원의 관제데모 개입 의혹이겠지요. 전 정권서부터 '어버이 연합'에 대한 의혹의 눈길은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이기에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후원금의 실체와 일당 2만원을 받고 동원된 탈북자들의 면면을 뉴스에서 확인한다는 건 어쩌면 영원히 공공연한 비밀로 그쳤을 법한 사실이 권력의 향배가 어느 정도 바뀌는 바람에 사실로 굳어져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고 검사장을 역임했던 홍모 변호사의 법조비리 의혹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수사팀의 일원으로 당시 수사진을 사실상 지휘했던 그는 수사 진행 상황을 수시로 브리핑하는 등 수사의 핵심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돈을 받은 적도 없는 노 전 대통령 한 명의 포괄적 뇌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갖은 짓을 다하는 바람에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인물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가 도박혐의로 물의를 빚고 있는 일개 기업체의 대표를 변호하면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다는 건 권력의 지형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겠지요.

 

가습기 살균제 수사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재난 상황이라고 할 만큼 막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나 정부는 뒷짐만 진 채 나 몰라라 했던 게 사실입니다. 개인과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죠. 5년이나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 수사를 진행시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권력의 지형도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권력의 지형도가 바뀌면서 이와 같은 권력형 비리가 하나둘 터져나오는 까닭은 그동안 권력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비밀로 덮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할 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가 몰랐던 더 많은 것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한 두테르테를 보더라도 기존 정치에 실망한 필리핀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의 예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작금의 정치현상은 분노한 시민들의 정치혁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 흐름을 권력의 힘으로 막아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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