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반양장) -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세간의 주목을 받는 책이 있기에 나도 대화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슬쩍 한 번 읽어 보았다. 저자가 '채사장'이란다. 이름에서부터 사기꾼(?) 냄새가 폴폴 나는 게 영 미덥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는 데에는 나름의 어떤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싶어 꾹 참고 읽어보기로 했다. 책의 제목은《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다. 참으로 절묘하지 않은가. 사기꾼 냄새 폴폴 나는 저자의 이름과는 달리 책의 제목은 제법 진실된 느낌을 주니 말이다. '넓고 깊은 지식'이나 '좁고 깊은 지식'도 아닌 '넓고 얕은 지식'이란다. 모름지기 지식이란 깊이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 책의 전편, 그러니까 1권에 해당하는 현실 세계 편(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은 내용이 어땠는지 모르지만(난 엉뚱하게도 2권부터 읽었다) 이 책, 2권에 해당하는 현실 너머 편(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은 뭐랄까, 요점 정리가 잘 된 국민 윤리 과목의 족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족보가 뭐냐고? 흠, 세대 차이가 나는군. '족보'란 말이지, 과거서부터 쭈욱 전해 내려오던 주요 기출문제나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정리하여 놓은 것으로서 수험생들이 공유하는 요약본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거란다.

 

지금껏 세상의 모든 시험이란 시험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마는 친구들과 시험공부를 같이 해보면 그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친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교과서 내용을 전혀 외우지도 않은 채 문제부터 푸는 학생, 문제부터 풀지는 않지만 문제지 앞면에 압축하여 요약된 교과 내용(대개는 한두 쪽 분량)만 외운 후 문제를 푸는 학생, 참고서나 교과서를 서너 번 읽고 문제를 푸는 학생, 문제는 풀지 않더라도 교과 내용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달달 외우는 학생, 달달 외우는 걸로도 부족해 문제란 문제는 모두 풀어보는 학생 등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공부 방법도 제각각인 것이다.

 

나는 암기과목의 시험공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달달 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국정 역사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운 후 학력고사를 보러 갔을까. 그런 성격 탓인지 남들이 판단할 때는 시험에 절대 나오지 않을 듯한 내용도 기를 쓰고 외워야만 안심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남들이 잘 때 자지 않고 시험공부에 매달렸을까? 그렇지 않다. 내 주관은 명확했다. 학교 공부는 학교에서 끝내고 온다, 는 것이었다. 요는 수업시간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노트 필기를 끝내고 선생님이 필기 내용을 설명할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거나, 장난치거나, 멍 때리지만 나는 선생님의 말을 토씨까지 다 연습장에 받아 적었다.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 게 아니라 집중력을 떨어트리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중요한 것만 요약하기는 쉽지만 말 자체를 모두 받아 적는 건 속기사가 아닌 한 쉽지 않은 법이다.

 

시험 공부를 늘 이런 식으로 했으니 책인들 건성건성 읽힐 리 만무하다. 아무리 재미없는 책일지라도 일단 손에 잡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성격 참 더럽다. 만일 내가 아니라 옆의 친구가 그랬더라면 "재수없다."고 한마디 했을 성 싶다. 학창시절부터 굳어진 독서 습관이나 공부 습관 탓인지 나는 이 책의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치 윤리 문제집의 단원별 요약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신비에 대해 다뤘다. 신비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들 간에 공통된 체험이 불가능한 까닭에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공통된 체험이 불가능하지만 너무나 명확하고 나에게는 확실하게 인식되는 것, 그것이 신비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죽음과 삶이 풀리지 않는 심오함의 중심이 된다." (p.367)

 

일부분일지라도 이 책의 내용을 일언반구도 없이 책의 내용과는 하등 연관도 없는 듯한 나 자신의 경험만 줄줄이 써내려간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요점정리 한 것을 다시 요점정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양철학에 몰두했던 나로서는 이 책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형이상학적인 내용일수록 앞뒤 맥락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되는 탓인지 일주일이 무척이나 짧아진 듯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삶과 죽음의 문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주제의 대화는 일상적인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대화가 지적 대화에 속하나 보다. 격세지감이로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