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우식당 - 그곳은 우리를 눈 감게 만든다. 그는 분명, 특이한 사람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장진우 지음 / 8.0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지나온 과거의 나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지는 못하였지만)며 이룬 것 하나 없이 야금야금 나이만 먹었던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양해를 구한다고 진심으로 사과한 후부터는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세월이 제멋대로 흐르더라도 조금 관대해졌고, 벌써 일년이 흘렀어? 하는 느낌이 들 때조차도 조급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데 사과만큼 필요한 것도 없는 듯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지난 시간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시라.

 

"당신이 중학교 2학년 아들을 서울로 보내놓고 얼마나 하염없이 울었는지를 고백하시며……. 나도 울었고, 부모님도, 잔치에 온 모든 사람이 울었다. 얼마나 애를 끓었을까. 자식이 어떤 길을 가든 묵묵히 응원한다는 것이 사실은 그 얼마나 힘들고 애틋한 일일까. 눈물잔치가 된 환갑잔치에서야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깊은 속을 조금이나마 마주하게 된 것이다." (p.286)

(주의 : '애를 끓었을까'는 '애를 끓였을까'로 써야 맞는 듯. 책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장진우가 쓴 <장진우 식당>을 읽는다는 건 흔하디흔한 크림 파스타를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장진우'라는 이름 석 자를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게다가 나는 음식만큼은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인지라 없던 관심이 새로 생길 리도 없었다. 달리 말하면 음식의 미묘한 맛 차이에 대해 그닥 예민하지 못하다는 애기가 된다. 기사식당의 돼지불백이나 유명 맛집의 불고기 백반조차도 구분하지 못한 채 그게 그거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니 유명 맛집을 찾아 전국을 떠돈다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미친 X' 소리가 절로 나오고 안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그 시간이면 책을 한 권 더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거나 산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 텐데 뭐 하러 그 먼 곳을 헤매고 자빠졌누?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나의 유년 시절이 단단히 한몫을 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식당에서 거하게 외식을 한 적도 없고, 맛을 비교할 정도로 이집저집 다녀본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식이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된 후에도 원래부터 없었던 취향이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SNS가 발달한 요즘에는 너도나도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바람에 전국 어느 식당을 가건 맛도 모양도 비슷해진 게 사실이다. 그런 마당에 맛집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식당을 한다는 장진우 저자가 들으면 펄펄 뛸 노릇이지만.

 

"요리인으로 사는 건 힘들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보고 왜 성공했냐고 하는데, 그건 끈질기게 계속했기 때문이다. 힘들 때 좌절할 때 적자날 때 그만뒀으면 지금 성공하지 않았겠지. 계속할 수 있는 자만이 발전할 수 있다." (p.353)

 

이 책에서 저자는 중학교 2학년에 퇴학을 당한 자신이, 국악을 하고 사진을 찍던 자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잡다한 것을 좋아하던 자신이 어떻게 식당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다소 거칠지만 솔직하게 쓰고 있다.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어한다. 가수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운동선수는 운동을 하거나 후배를 가르쳐야 하고, 배우는 연기를 해야 하며,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이다. 다른 직업군에 속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면 유명 작가 한 사람 불러서 그 사람 이름으로 책을 내면 된다. 전기문의 형식이든 수필의 형식이든 말이다. 그런데 꼭 자신의 유명세만 믿고 되도 않는 책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같잖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따금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종이가 썩어나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정말 개나 소나 책을 낸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에게나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가 있다는 건 나도 안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보장된 자유로 인해 출판계가 무슨 비주류의 각축장이 되어도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자비로 책을 찍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공짜로 돌리는 것 정도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유명 가수라는 사람이, 유명 운동 선수라는 사람이, 유명 방송인이라는 사람이, 앞에 '유명' 자만 붙으면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책을 쓴다고 난리법석이다. 이제 그런 모습은 그만 봤으면 싶다. 지겹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