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사람과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 한편에 허공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대체불가의 빈 공간, 그 허공으로 인해 가슴에는 이따금 스산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봄날이나 한여름 무더위에도 오소소 한기를 느끼게도 됩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세월보다 더 질긴 게 사랑이고 그리움인 듯합니다.

 

미국의 전직 코미디언이자 방송인이었던 리사 고이치의<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을 읽는 내내 재작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특별히 정이 깊었다거나 각별했던 부자지간도 아니었건만 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문득문득 당신을 생각나게 합니다. 더구나 온 가족이 모이는 설과 같은 명절에는 그 감정이 격해지게 마련이지요. 아직도 저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8월의 어느 날, 당신은 구급차에 실려 보라매 병원 응급실로 향했었지요. 에어콘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얇은 병원 이불 한 장만 겨우 덮은 채 병상에 누운 당신은 밤새 떨었습니다. 보다 못한 누나가 두툼한 이불 한 채를 집에서 가져오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 주치의 면담 시간이 어찌나 길고 막막하던지요. 가망이 없다는 말보다 더 가혹한 것은 퇴원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가족 누구도 원치 않았던 노인 요양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임을 당신도 직감했겠지요. 이번 설에도 가족들은 고해성사를 하듯 그때의 일을 되짚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말이지요.

 

"나는 잠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상황을 파악하며 장례식장 직원들이 와서 엄마를 데려가 우리도 못 알아보게 만들어놓기 전에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리고 앤지와 함께 방으로 돌아와 나지막이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거리로 뛰쳐나가 대성통곡하며 달리지 않았다. 엄마 몸 위로 쓰러져 억지로 떼어낼 때까지 달라붙어 있지도 않았다. 엄마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엄마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앗다. 전혀." (p.262)

 

2011년 12월 작가는 부모님과 함께 긴 주말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엄마가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신장투석을 받지 않고 엄마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4일.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셈입니다. 14살 위의 오빠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작가는 엄마의 뜻을 존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엄마를 돌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10살 위의 언니가 합류하여 작가와 교대로 엄마를 간호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엄마의 평화로운 죽음을 위해 서류정리며 유품정리를 대행하고, 지인들과의 마지막 인사, 장례식 준비 등 이 세상과 결별하기 위한 모든 절차를 밟아나갑니다.

 

"나는 엄마의 결심을 백 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심을 실토했을 때 엄마에게 평온함이 엿보였다. 어떤 기운 같은 것이 엄마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자주 빛의 기운. 치유의 빛. 실로 오랜만에 엄마가 진정으로 행복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손에서 뭔가를 놓았을 때 비로소 평화를 찾는 법이다. 그렇게 밀리 고이치 여사도 드디어 평화를 찾았다." (p.36)

 

퇴원할 당시 작가의 엄마는 몸무게 30Kg에 백내장과 심한 척추측만증, 신장 기능 이상으로 제대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거실에서 딸들에게 자신의 용변마저 처리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처지는 참으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와 그의 가족들은 차분하게 대응한 듯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보내준 사랑과 지속적인 격려, 무한한 신뢰가 없엇다면 전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위"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 이 종이 위에 적힌 모든 단어를 안내해주고, 또 평생동안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천국 소풍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요." (p.275 '감사의 글'중에서)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요. 산 자에게는 죽음보다도 겨우살이가 또는 하루의 먹거리가 더 다급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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