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작고 사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동안 선이 굵은 작품에 빠져 있었거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를테면 심리학이나 철학 등 소위 '형이상학적'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을 읽은 뒤끝이면 찾아오는 현상이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몇 번 손바뀜을 거치고 나면 훌쩍 일 년이 가곤 한다. 세월은 참으로 무자비한 구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는 세월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거나.
황석영의 소설 <해질 무렵>을 읽었다. 황석영의 작품은 하도 오랜만이라 일견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장길산>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 대부분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일부러 피해왔었다. 소설의 소재가 비슷했다는 게 아니라 소설의 문체나 분위기가 어찌나 비슷하던지 이게 이것 같고 저게 저것 같아서 도통 분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저 소설의 제목만 간신히 기억하여 읽었다 안 읽었다를 가름할 뿐이었으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된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더이상 괜한 시간낭비는 하지 말자는 게 황석영의 작품을 피해왔던 나의 이유였다.
소설은 등장하는 두 인물(박민우와 정우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약간의 답답함이 있더라도 감수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60대의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29살의 연극연출가 정우희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인연의 끈도 없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좀체 좁히지 못한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p.198 '작가의 말' 중에서)
경남 영산 출신의 박민우는 맨주먹으로 상경한 그의 부모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너 나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칠십년대였다. 삶의 각축전일 수밖에 없었던 달동네에서 박민우는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 결심하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 동네에서 학생이 있는 집은 어묵튀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의 집과 국숫집, 단 두 집뿐이었다. 공동수돗가 근처의 국숫집에는 그보다 한 살 아래의 차순아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꼬마들을 데리고 구두닦이를 하는 재명이와 그의 가족이 살았다.
"나는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살이의 치열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은 지옥이 저 바깥세상의 축소판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었고 어디론가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헤쳐나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이 무렵 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이 동네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세우고 대학 입시 공부에 매진했다." (p.75)
얼굴이 예뻤던 차순아는 동네 남자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박민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민우가 유명 대학에 입학하여 마을을 떠난 후 차순아는 마을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대학 입학에도 실패하고 그녀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모녀만 남은 국숫집은 급격히 쇠락한다. 그들 모녀를 거두어 준 사람은 재명이였다. 그들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었지만 홍역으로 잃고 재명이마저 불법도박 혐으로 수감된다. 차순아는 책 외판원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하여 아들 한 명을 낳게 된다.
반면 박민우는 대학생이 된 후 독립하여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 그가 자란 달동네와 거리를 두고 지낸다. 게다가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입주과외를 시작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연을 맺게 되고 졸업 후 유학과 함께 결혼도 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건축붐이 일었던 팔,구십년대에 그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아내가 미국에 있는 딸의 곁으로 떠난 후 그는 혼자가 된다.
"이튿날 두통과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나자 머릿속이 텅 빈 백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더니 점차 바닷가, 언덕 위에서 본 노을, 말기 암 환자의 낙천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여자의 목소리 등등이 얼룩처럼 그 백지 위에 번져간다. 뒤죽박죽 이어진 꿈의 연장인 것만 같아서, 어서 돌아와야지, 머리를 몇 번 거세게 흔들었다." (p.31)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우희와 김민우는 가까워진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줄곧 출구도 없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김민우는 차순아의 아들이다. 차순아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빚만 남기고 죽었다. 그 뒤로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정우희가 세들어 살던 반지하의 셋방이 물에 잠겼을 때 김민우는 그녀로 하여금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며칠 동안 신세를 지도록 한다. 그때 정우희는 차순아와 모녀처럼 가까워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가쁜 가난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던 때인 팔십년대를 거치면서 이 좌절과 체념은 일상이 되었고, 작은 상처에는 굳은살이 박여버렸다. 발가락의 티눈이 계속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뽑아내야 했는데,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약간의 이질감이 양말 속에서 간신히 자각될 뿐." (p.112)
정우희는 차순아의 일기 비슷한 수기를 읽은 후 박민우와의 만남을 주선하려 애쓰지만 아들이 자살한 후 차순아는 결국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p.144)
황석영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든다. <해질 무렵>도 다르지 않았다. 산업화 초기의 혼란을 틈타, 제어장치도 없이 욕심을 채워갔던 기성세대의 탐욕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업보로 작용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들추어낸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탐욕의 속도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 줄 모른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 가슴속 응어리가 더 크고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만 같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위로하는 법이 없다. 돌덩이를 삼킨 듯 답답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