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자라 여섯 살이 되면 아이들은 하루에 400번 넘게 웃는다. 그런데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웃음을 잃어버리나 보다. 인간의 삶을 80년으로 볼 때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밥 먹는 데 6년, 사람 기다리는 데 6년을 쓰지만, 웃는 데는 고작 22시간 정도를 보낸다고 한다." (p.155)
누가 내게 오늘 얼마나 웃었나요? 묻는다면 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크게 소리 내어 웃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도통 기억나는 게 없으니 말이죠. 불황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우울한 현실을 생각할 때 저는 지극히 보편적인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걸어 가기에는 조금 멀다 싶은 거리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웬만한 거리는 일부러라도 걸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차피 내 두 발로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할 날이 분명히 올 텐데 지금부터 미리 연습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지요. 그렇게 걷다 보면 거리의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어둡고 침울해졌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활기가 없어졌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활기가 넘치는 시대에 살지 못하는 것도 운명인 것을. 맘에 안 든다고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다면 이 우울의 시대를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던 분이라면 방송 작가 박금선이 쓴 에세이 <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활기 없는 시대를 불평 없이 살아가기 위한 약간의 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잠깐의 체험은 경험 삼아 해 볼 만하니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체험이 이어지고 반복되면 묵직한 경험이 될 것이다. 경험 속에서 지혜가 싹트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과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마음먹어 보자. 나는 지금 체험 관광 하러 왔다.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자." (p.283)
작가는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인 [여성시대]를 22년간 이끌어 오고 있는 베테랑 방송 작가라고 합니다. 작가는 200만 통에 이르는 여자들의 편지 가운데에서 일, 사랑, 결혼,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인생의 교훈 50가지를 추려 내어 이 책에 쓰고 있습니다. 자신 또한 워킹맘으로 30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 시절의 자신처럼 살고 있을 많은 후배들에게 진실한 조언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번잡한 일상을 그저 무심히 지켜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더러 있고요.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삶을 이루는 처음이자 끝인지도 모를 텐데 우리가 바라는 삶의 형태는 어쩌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아무도 갖지 못한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환상으로 삶의 기준을 삼는다면 모든 게 불만 투성이이겠지요.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람을 크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누기도 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보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출 수 없을까 고민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이 그나마 변화한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부는 어리석게 해야 합니다. 당장의 이익을 쫓지 말고요."
작가가 살아온 모습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작가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한 사람의 아내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일인 다역을 하며 살자면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앉아 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겠지요.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다 보면 실수도 많았을 테구요. 더러는 그 실수로 인해 눈물 흘렸던 날도 많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눈물과 실수로 써내려 간 삶의 이력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는 '그때 나는 왜 그리도 우울했던 걸까?', '밥벌이, 그 고단하지만 고귀한 일에 대하여','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산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 '당신의 남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속이 깊다', '살면서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하는 일', '시댁 일은 공적으로 처리하라' 등 소제목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삶의 지침들이 빼곡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면서 나도 모르게 저질렀을 많은 실수와 아내에게 주었을 상처들을 생각했습니다. 삶의 이력서와 삶의 반성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그렇게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