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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똑같은 책을 읽고도 누구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줄줄이 풀어놓는데 나는 고작 재미있다거나 따분하다거나 감명깊었다는 등의 상투적인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생각하면 울컥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지요. 나는 혹시 나의 뇌에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들었더랬습니다. 문학에 대한 지식의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이나 느낌을 말할 때에는 적어도 엇비슷하거나 너무나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말입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항상 너무 늦은
순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곤 하지만, 저는 독서를 통해 커다란 위험 없이 무지와 오만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특히 고전이란, 이탈로 칼비노의
정의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읽지 않았으면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 오만은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을
닮았습니다." (p.29)
작가가 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한 듯 보입니다. 읽지도 않은 고전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자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것이지요. 모르긴몰라도 저는 작가처럼 멋지게
표현하는 대신 '읽지도 않은 책을 마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도의 식상한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차이가 눈에
확연히 보이지요? 이러니 제가 낙담할 밖에요.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놓고 비교해도 이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듯합니다.
아무튼, '보다' '말하다'에 이어 김영하 산문 3부작의 완결편으로 출간된 이 책은 유명 작가이기
이전에 독서광으로서의 그의 편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앞의 두 작품을 읽고 내심 작가에 대한 호감이 증가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콕콕 짚어준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빨리 읽어야지' 생각했던 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가 이제서야 시간을 내어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책에 비해 가독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보다'와 '말하다'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반면 '읽다'는 다분히 작가의 지식에
의존하여 책이 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뇌는 현실과 환상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현실은 이러한 꿈처럼 기억되고, 어떤 이야기는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야기와 다릅니다. 어제 꾼 꿈을 정확히 이어
꾸지는 못하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꿈만큼이나 생생한데 계속 이어집니다." (p.64)
작가가 했던 여섯 차례의 문학강연을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은 그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를테면 '오디세이아'와 '오이디푸스 왕'에서 시작된 '독서는 왜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독서로 인해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되고',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고
했던 작가의 대답은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침내 독서는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행위로 확장됩니다. 그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많은 책들을 동원합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읽었던 많은 책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때로 자신이 쓴 소설을 예로 들기도 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소설로 끌어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과 유리되는 독특한 경험입니다. 예컨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초반부에 봉룡이 자신의 아내 숙정과
외간 남자의 만남을 목격하고 다짜고짜 매타작을 하는 장면을 읽으며 마치 내가 숙정이 된 양 쩔쩔매다가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생경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독자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느끼도록 하는 흔한 예가 될
테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p.101~p.102)
작가는 소설 읽기를 두고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또는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 개개인의 치환되지 않는 독자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서는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유창한 강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이따금 꾸벅꾸벅 졸다가 소란한 웃음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한나절 어슬렁거렸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