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개인적인 - 내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한다는 것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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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

세상이 조금 더 잠잠해지면 읽어보게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뭐라 덧붙여 설명하기도 전에 군은 단박에 "언제 그런 날이 올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가롭게 서평이나 읽을 그런 미래는 제게 없을 것 같군요." 하는 반박의 말과 함께 나에 대한 신뢰(그런 게 있었다면 말일세)마저 반납하겠지. 이해하네. 아니,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로 군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네. 다만 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일세.

 

君,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단지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주관일세. 군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인간종의 한 명일 테고,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걸세. 그러나 비슷한 류의 군상들과 동질성을 추구할 수 없는 특별한 개인을 나누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네. 이를테면 군과 같은 개별성을 지닌 인간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 내가 군에게 특별한 애정(오해하지는 말게나. 편애는 아닐세.)을 표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라네. 군에게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고 느꼈던 나의 소감을 말한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고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군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색깔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의 체면이나 위신쯤은 어찌 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우리는 모두 더없이 소중한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스스템'이라는 벽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책무다." (p.165)

 

그렇다네. 위의 인용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지. 임경선 작가는 그야말로 하루키의 열성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걸세. 본인 입으로도 고백하고 있지만 하루키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라네. 시쳇말로 '하루키 덕후'가 아닐 수 없지.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한 팬덤이나 유명 작가의 슈퍼 덕질이라고는 오해하지 말아주게. 슈퍼 덕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열성팬의 입장에서 한 위대한 작가에게 바치는 헌정서쯤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네.

 

"내가 처음 배운 언어는 일본어였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가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요코하마에서 다녔다. '린 게이센'이라는 희한한 이름(임경선을 일본어로 읽으면 이렇게 된다)을 가진, 한국에서 온 계집아이였던 것이다." (p.122)

 

임경선 작가는 유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네. 어쩌면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했을 걸세. 그렇다고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사람도 아니지. 일본이나 한국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점잖고 유식하며 예의 바르고 배려를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일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참으로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네. 그녀가 정식 작가로 등단하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라는 말은 아니지만 문학계의 종사자들도 종종 동종 업종의 종사자(?)로서 갖는 그들만의 패거리 정신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네. 그런 어두운 면이 독자들에게 낱낱이 밝혀지는 건 아니지만 잘 알다시피 어느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지적했던 바일세. 나는 임경선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나 자신과 똑같아 보인다면 그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간은 고독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조차 없음을 새롭게 깨달았다네. 거창하지만 말일세.

 

"독자마다 소설을 통해서 얻는 메시지가 다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생은 고독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고독이라는 채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소설을 쓰는 의미는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p.188)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자기 안에 끌어안고 사는 일종의 암흑 같은 것이에요. 나는 그것들을 진지하게 관찰해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그대로 리얼하게 쓰고 싶어요.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p.238)

 

君,

우리나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그러나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듯하네.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기억한다면 작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 순수성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나는 강하게 믿게 되었다네.

 

"나에게 가장 울림이 컸던 그의 '고통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이다. 그에게 인생은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뭔가 자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방황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그야말로 불확실하고 불안한 보통의 삶을 반영한다." (p.242)

 

혹독했던 추위가 한풀 꺾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군이 말했었지. 밖에서 하는 일이니 요즘 군의 노고가 이만저만 한 게 아닐 거라고 쉽게 집작할 수 있었다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아르바이트라면 나도 할 말이 꽤나 많은 사람일세.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군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라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은 비록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굳건히 믿고 있기에 군도 그리 하기를 바랄 뿐이네. 슈퍼 덕질이라고 해도 좋으니 제발 그렇게 하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군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어떤 성과가 있을 거라고 믿네. 지금 내가 군에게 슈퍼 덕질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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