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묻다 두 번째 이야기 -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 문득, 묻다 2
유선경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그림이 그려진 반투명의 기름종이 서너 장을 넘기면 비로소 책이 시작된다.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이라는 표지글과 "문득, 묻다 두 번째 이야기" 라는 책의 제목,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여는 글'과 함께 깨알같은 목차가 이어지고 'Chapter 01 그 사람은 누구일까... 문득, 묻다'로 시작되는 본문. 방송 작가가 쓴 책은 어딘가 모르게 태가 난다. 섬세하다고 할까, 아니면 감성적이라고 할까. 아무튼 왠지 모르게 멋을 부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말을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 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방송작가가 쓴 책을 그닥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바람처럼 스쳐간다는 걸 나는 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실컷 놀고 돌아온 아이가 제 딴에는 공부가 하고 싶어 책을 펼쳤는데, "너 공부 안 하니?"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안방으로부터 건너오는 것이다. 그럴 때 아이의 가슴에는 불현듯 없던 오기가 불끈 솟아오르고 방금 전까지 온몸으로 퍼지던 공부에 대한 열의는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그와 유사하게 방송작가의 글은 광고의 카피처럼 독자의 느낌을 강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슬픈 내용의 글을 독자가 읽고 '슬프다' 느끼면 그만인데 글의 이곳저곳에 슬프게 느낄 만한 단어를 배치한다거나 직접적으로 말해버리면 괜히 한 번 뻗대보는 철부지 아이처럼 슬픈 글도 슬프지 않은 듯 읽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런 선입견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읽을까 말까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나《문득, 묻다-두 번째 이야기》는 다행히(?) 그런 감상적인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전편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책에 대한 일말의 사전 정보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들었다 사라질 것 같은 여러 궁금증들, 알면 좋고 몰라도 불편할 것 없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 있다. 책에는 'Chapter 01. 그 사람은 누구일까... 문득,묻다'에 38가지의 질문이 그리고 'Chapter 02 매일 하다가... 문득, 묻다'에 38가지의 질문이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화투의 '비광' 속 우산 쓴 사람은 누구일까?' 나 '키스하다가 죽을 수도 있을까?'와 같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궁금증들에 대해 저자는 상세히 답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묻다' 코너를 통해 질문을 조금 더 확장하기도 한다.

 

"마흔넷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오로지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공군에 자원했다가 세상을 떠난 생텍쥐페리였습니다. 이런 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65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생텍쥐페리가 탄 정찰기를 격추시켰다고 고백한 리페르트의 사연도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작가의 생명을 본인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앗아갔으니까요." (p.18) '누가 생텍쥐페리를 격추시켰을까?' 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아아,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감탄하기도 하고, '아, 이건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이네.' 하고 바로잡게도 된다. 그러나 입사시험의 상식 시험문제로 나올 것도 아니고, 이런 걸 모른다고 누구한테 '그것도 모르느냐?' 퉁박을 맞을 일도 아닌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임이 잦은 연말연시에 아무런 대화도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침묵의 모임을 갖느니 차라리 이 책 속의 한 꼭지 에피소드를 들려줌으로써 '와하하' 한바탕 웃을 수 있다면, 그리고 모임에 나온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건 어디서 알았느냐'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이 책은 얼마나 유용한가. 책값을 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게다가 코르티솔 수치가 조금만 올라가도 밤새 말똥말똥해질 수 있다고 하지요. 20대 때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뱃살이나 불면이 따라붙지 않았는데 중년에는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는데도 불면과 뱃살이 느는 이유, 이런 생물학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불면은 앞서 말했듯 상대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저하시켜서 더 부정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하니 문득, '늙으면 노여움이 많아진다'는 말 역시 영 근거가 없는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p.332) '나이가 들면 왜 잠이 없어질까?' 중에서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그치지 않고 내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 아니면 술 얘기다.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겠다'는 둥 '일주일 내내 술을 먹었더니 속에서 신물이 넘어온다'는 둥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날씨 탓인지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건 있지만 요즘 나를 괴롭히는 건 술이나 날씨가 아니라 밤에 문득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깨고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곤 한다. '내일 일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자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뿐이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기를 나이가 들면 코르티솔 수치가 조금 높아져 밤새 말똥말똥해진다는 것이다. 한 시간이 아쉬운 취준생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부러운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면 궁금한 것도 적어진다는데 그런 속설은 나에게 맞지 않는지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문득 저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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