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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아빠 육아 - 할 일 많은 직장인 아빠의 육아법,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이제 막 한글을 뗀 듯 보이는 어린 아이가 도서관 한 귀퉁이 또는 대형서점의 작은 공간에 철푸덕 주저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장난을 걸고 싶어진다. 어찌나 열심인지 통통한 볼살이 발그레하고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책장이 가볍게 떨리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오롯이
책에 빠져 있는 아이의 모습. 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지만 '아이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내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 등 뒤에 감추고는 살금살금 아이 곁으로 다가가 그 씰룩거리는 볼살을 콕콕 찔러보고 싶은 유혹이 더
강하게 들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아이의 독서를 훼방 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런 유혹은 나이 든 사람이 아이의 독서를
방해하는 일반적인 심술과는 다르다. 빨려들어갈 듯 집중하는 아이의 관심을 살짝 흐트러뜨려 나에게 잠시나마 아이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는
없을까 궁리하는 것은 약간의 질투가 섞인 애교로 봐야 할 것이다.
느닷없는 공격에 당황한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책을 잡고 있던 한 손으로 내 검지손가락이 다가온 쪽으로 자신의 팔을 허공에 휘휘
내 저을 것이며, 귀찮아 죽겠다는 듯 '아잉!'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토로할 것이다. 그 일련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머문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책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아이를 방해하고 싶어할 테고 말이다. 나는 이런
감정이 들 때마다 어떤 죄책감보다는 슬몃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책에 빠져들던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책을 읽으며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낄낄거리던 아들의 웃음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안성진 님의 육아서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읽는 내내 볼살 통통했던 아들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없었던, 더 어렸을 적의 아들은 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귀기울여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를 외치곤 했었다. 한 번만 읽고
잠들었으면 바라는 나와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싶어했던 아들의 실랑이는 이제 해보고 싶어도 더는
할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가 아이로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잠시 한 눈을 팔면 어느 순간 훌쩍 커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훌쩍 성장한 아이들의 성장을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육아라는 단 하나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p.61)
누구에게나 자식은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 그러나 그 소중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 다르다. 이를테면 그것은 선택지의 하나이거나
가치관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한 아이가 겪게 되는 미래는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육아가 자신의 개성이나
입맛에 맞는 하나의 선택이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부부만 사는 햇가족이 보편화된 요즘, 육아의 기술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워 저절로
습득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은 초보 엄마, 초보 아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좋다. 육아는 더이상 저절로 습득되지 않는, 시간을 내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전문 영역으로 귀속되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육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이를 알기 위해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한 책을 반드시 찾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거나 전문가를 찾아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부분의 부모들이 저렴하고 접근하기 좋은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책만큼 풍부한 지식을 전해주는
수단이 없는데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사는 것이다."
(p.83)
몇 년 동안 한 인터넷 서점 블로그의 글벗으로 지냈던 하우애(안성진) 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육아서를 출간했다는
소식도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왜 이제야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바쁜 직장인으로서의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하루 10분을 할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일회성의
이벤트로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따금 주변의 아이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삼겹살 잘
굽는 방법'이 시험 문제로 나온다면 정답을 모를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일 년에 서너 번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원없이 먹고
마시게 함으로써 아빠가 맡은 육아의 책임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육아는 아이의 성장을 돕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하우애(안성진) 님이 굳이 '10분'을 강조한 이유도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쓴 말임을 책에서 밝히고 있다. 하루 10분,
지극히 짧다고 생각하면 짧을 수도 있는 이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부족한 잠을 잘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도 있고, 친구와
모여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아이는 자라고, 그 소홀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부메랑으로 다가올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는 아빠의 모습을 자신의 미래로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 10분 아빠 육아'는 어쩌면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의무이자 삶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