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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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심각하다. 나랏님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주에 찔끔거리며 내린 비도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그나마 날씨가 푸근하다고 좋아할 일도 아닌 것이 맑은 날이면 중국발 미세먼지로 나라 전체가 먼지에 덮여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답답하기만 하다. 언제부터였지? 꽤 오래된 듯한데... 아무튼 나는 올 가을 들어 가을다운 가을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것만 같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불만도 이만저만하지 않다. 그렇다고 나의 불만을 누구에겐가 속 시원히 토로할 수도 없으니 애면글면 속만 끓이고 있다. 투명하게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았던 게 마치 몇십 년은 지난 듯하다.

 

날씨에 대한 불만은 독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답답하고 끈적끈적한 내용의 소설이나 오랜 시간 몰입을 요하는 철학이나 경제학 서적은 일단 제외. 가볍고, 상쾌하고, 쉽게 이해되는,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그런 책에 눈길이 간다. 이 시기에 나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책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수필집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울지 않는 아이>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자평 속에 책은 막힘 없이 쭉쭉 읽혔다.

 

"내게도 당나귀가 한 마리 있다면 좋겠다. 당나귀와 뒤뜰과 무화과나무와, 산책을 위한 길과 쉴 수 있는 언덕, 그리고 자그마하고 시원한 샘. 그러면 소설 따위 쓰지 않고 '무한하고 평화로우며 덧없는' 해 질 녘의 세계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나는 선한 것을 좋아한다." (p.30)

 

그녀의 팬은 국내에도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왠지 에쿠니 가오리의 팬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크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올 가을처럼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는 날이 한동안 지속된다거나 장맛비가 한 달 내내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사람들은 다들 '아, 에쿠니 가오리가 생각나는군' 하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런 다음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외출을 삼가한 채 한동안 틀어 박혀 그녀의 책만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날씨마저 우울하여 마음이 평소보다 백 그램쯤 더  무거워지면 나도 모르게 에쿠니 가오리의 가볍고 생기발랄한 문체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열렬한 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문득 그녀를 생각해 내는 걸 보면 그녀에게는 나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뭐랄까, 그녀의 글에는 복어맑은탕을 한 그릇 쭈욱 들이켰을 때의 개운함이 있다. 입 안에 감도는 텁텁한 느낌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이 영 없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편한 방향으로 흐른다. 책을 읽느니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나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린애였다. 비눗방울 놀이 말고는 그림을 그리고 학종이 접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흐물흐물. 개어놓은 이불 위에 엎드려 그저 뭐라고 주절주절거리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놀이를 나와 동생은 그렇게 불렀다." (p.64)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 에세이를 다 합쳐야 고작 서너 권일 뿐이다. 그런 내가 작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것은 조금 건방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리뷰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에서는 좀 어떠랴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녀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썼던 8년 치의 에세이를 모았으니 만큼 이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쓴 글이 대부분이다.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p.146)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멍하니 빨려들 듯 읽고 있노라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모름지기 자신이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아주 특별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 평범한 일을 평범하지 않게, 적어도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느낌을 잘 감지하고 그것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갈무리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읽는 타인의 감정은 곧잘 공감하면서도 평상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맹추도 그런 맹추가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한 권을 다 읽었더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뿌옇던 대기도 조금 밝아진 느낌이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 책등이 각이 졌는지 둥그스름한지, 글자의 간격과 활자의 종류, 종이의 색감, 냄새, 감촉, 서점 책꽂이에 아무리 책이 많이 꽂혀 있어도 내 손에 딱 맞춘 것처럼 감기는 책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고, 그런 책들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책이 지닌 '기척' 같은 것." (p.212)

 

정말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날씨와 독서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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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1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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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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