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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하기에 앞서 선무당 같은 나의 예언 한마디를 먼저 말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채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저로서는 과분한 선심을 쓰는 셈이지만 뭐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돌린다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직업이 정말 무당이나 예언가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자리 펴시지요' 하는 말을 종종 듣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단지 제가 말한 예언의 정확도에서 기인한 것일 뿐,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직업을 버리고 그쪽으로 완전히 전업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사설이 길다구요? 성질도 급하시긴... 암튼 제가 하는 예언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유지되는 한 주요 선진국 및 그를 추종하는 신흥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국가에서 앞으로는 극좌파의 정치 지도자가 득세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 우파로 지칭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실패했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부의 쏠림 현상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우편향의 진보 세력, 중도 좌파에게서는 희망이 없는가? 일반 대중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이고, 그들에게서 대안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판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페인 지방선거에서도 좌파 정당연합 포데모스 후보들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시장 자리를 차지한 바 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던 듯합니다.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영국 노동당에서 만년 비주류였던 제러미 코빈이 당권을 거머쥐고 미국에서는 좌파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내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치고올라오자 사람들의 생각은 '설마'에서 '어쩌면'으로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빈부격차와 분배의 불공정성에 맞선 ‘99%’의 반란, 허울뿐인 진보에 대한 반란이 좌파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나는 <불새>를 좀 더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 "내 안에 내 몸 안에" 있는 '붉은 공포'를 깊이 직면해야겠다." (p.197)
사실 이 책은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음악, 역사, 철학 등 우리가 사유하는, 혹은 사유할 필요가 있는 인문학적 생각의 '거리'들을 작가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모아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변혁의 시점에서 과연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이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곧 닥칠 미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설마 없겠지요.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공부의 필요성은 거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책에 실린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p.6)
저는 이 책을 읽는 데 근 한 달이 걸렸던 듯합니다. 370여 쪽의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말입니다. 제가 이 한 권의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잡아 먹은 까닭은 작가가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도서관 서가에서 간간이 꺼내 읽느라 그리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많은 책을 모두 정독 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작가가 인용했던 일부분, 그곳을 중심으로 앞뒤쪽 어림하여 이십여 쪽 정도를 읽었을 뿐입니다.
"국가를 사유화한 지도자에겐 당연하게도 후광과도 같은 카리스마가 생기기 마련인데, 거기에는 동의 구조와는 다른, 메시아의 재림과 같은 종교성이 대중을 압도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영적인 지도자와 대중만 남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질서는 모조리 공동화(空洞化)되어 버린다." (p.370)
사회의 변혁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전조를 눈치채는 사람도 적을 뿐더러 확실히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서 우리의 불행은 시작됩니다. 자살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가 만연했건만 그 시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경제학자는 아주 적었습니다.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적었구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를 휩쓴 월가 점령과 ‘분노하라’ 같은 대중시위가 오늘날 기성 정치권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반발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은 언제나 급작스러웠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대전의 발발을 그 전날에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