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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이든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어떻게 읽었어?'라는 질문이, '어떤 부분이 좋았어? 감동적이지는 않아?', 뭐 이런 질문들이 줄곧 떠오르게 됩니다만 저는 이석원의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이거 뭐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잠시 동안 독자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어떻게 읽었어?' 보다는 '어떻게 썼을까?'의 문제가 더 궁금해졌던 것입니다. '그냥 장난 한 번 친 걸거야. 아니면 소설을 쓰기 전에 스케치 삼아 대충 기록한 것이거나.'하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뒤로는 책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수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평을 업으로 하는 문예비평가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소설이나 희곡 같은 것은 허구로서 인간 본연의 진실을 추구합니다. 그렇지만 수필만은 문학이면서 거짓 아닌 사실로서 삶을 반성하고 의미를 추구하게 됩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 많이 헛갈릴 수 있습니다. 사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나 현재의 일, 눈에 보이는 것, 현상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나와있더군요. 결국 수필은 사실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하거나 보았던 것, 그것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 의미에 대한 성찰 등이 사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아직도 알 수 없는 것은 이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컨대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이런 식의 문제 제기는 무의미했겠지요. 그러나 '산문집'이라는 말이 표지에 선명한데 제가 어찌 자의적으로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통상적으로 '산문집'은 '수필'로 여길 뿐 '소설'로 인식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해괴하게도 장르에도 없는 '이야기 산문집'이라는 용어를 버젓이 내세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냥 '산문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낯이 뜨거웠던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이석원'이라는 사람을 들어본 적 없었고, 그가 작가이든 아니든, 가수이든 아니든 하등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피천득선생의 '인연'이 사실 논란에 휘말렸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의 애제자였던 분의 주장은 선생과 아사코의 만남이 사실이 아닌 허구이고 따라서 선생의 글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는 것이엇습니다. 독자인 저로서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문학계 안팎의 떠도는 말로는 선생의 글이 어느 정도 사실성에 기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사십대 이혼남인 작가는 어느 날 삼십대 초반의 여인을 소개받았고, 정신과 의사였던 그녀는 당시에 그녀의 남편과 긴 이혼 소송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잊고 지내다가 결국 이혼에 성공한 여인이 먼저 문자 연락을 해옴으로써 재회를 하게 됩니다. 이혼 기념(?)이었는지 두 사람은 그날 밤 서로의 육체를 탐하였고 그 후 여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작가를 불러냅니다. 물론 성인의 남녀가 만나 달리 할 것은 없고 계속해서 서로의 육체를 탐할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섹스 파트너였던 셈이었지요. 그런 관계에 신물이 난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던 그 날 지하 주차장에서 그녀의 전남편과 조우하여 시비가 붙는 바람에 작가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급기야 그녀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책의 내용은 대략 그러했습니다. 아,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예컨대 작가를 좋아했던 대학 후배의 이야기나 키스방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 밑도 끝도 없는 불운 올림픽 이야기 등이 나오는데 크게 감명 깊다거나 책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내용은 아니었고, 단순히 지면을 채우는 정도였습니다. 결말 부분에서 책의 제목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자와 헤어진 후 마음을 잡지 못했던 작가에게 익숙한 문자 한 통이 옵니다. '뭐해요?'라고 묻는 여자의 문자였죠.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소설로 말하자면 열린 결말이었던 셈이죠.
적어도 수필은 자기 고백적인 글로서, 작가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는 글이어야 한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음악에도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가 있긴 합디다만 그러나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차라리 소설이라 말하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비록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은 흔하게 듣는 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