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카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동화책이려니 읽었던 소설이 있습니다. 익숙하지도 않은 스페인 소설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국적을 제가 미처 몰랐다 하여 소설을 읽은 후 제가 받았던 따뜻한 느낌이 반감된다거나 불쑥 십여 도쯤 뚝 떨어져 냉냉한 느낌으로 변하는 건 아닐 겝니다. 책갈피에 끼워둔 어느 해 가을처럼 금방이라도 와삭 부서져 흩어질 것만 같은 추억. 거적때기처럼 마냥 후줄근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노란 추억 한 잎 반가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 표시를 했던 그 시간의 궤적이 새삼스럽고도 별스러운 기억을 하나 둘 건져 올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한참 동안 수다를 떨 수 있는 너른 공간을 마련한 듯합니다. 죽음을 주소재로 삼은 <일요일의 카페>는 여느 소설처럼 어둡거나 음침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껏 동화책이려니 여겼던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코코아 또한 소설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잔잔하게 이끄는 소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게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해줍니다.

 

"인생이라는 위가 비어 있으면 아무도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매듭짓지 못한 일을 끝맺기 위해 죽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는 거 알아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세상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화해를 해야 하는 거죠. 나 자신하고부터." "그러면 죽음이 우리에게 덜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이죠. 인생이 충만했다면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 맛있는 점심식사 뒤의 뜨거운 차처럼." (p.123)

 

1월의 어느 일요일. 소설 속 주인공인 이리스는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던 것이죠. 기차가 지나다니는 다리 위에서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뛰어들려는 순간, 아이가 손에 든 풍선을 터뜨리는 바람에 그 소리에 놀란 이리스는 자살을 포기게 됩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매일 지나다니던 길모퉁이에서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카페를 발견합니다. 그녀가 읽은 간판의 이름은 이랬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 이리스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섭니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기에 일요일 오후는 나쁜 시간이다. 특히 꿈을 억누르는 잿빛 망토가 도시를 뒤덮어버리는 1월의 일여일 오후라면 더욱 그렇다." (p.13)

 

자리에 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주문하고 잠시 음악을 듣고 있는데, 맞은편 자리에 웬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 앉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본인을 루카라고만 소개할 뿐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는 남자는 이 탁자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마법의 탁자라고 말합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이리스는 그게 인연이 되어 일주일 동안 그 카페를 드나듭니다. 두 번째로 이리스가 앉은 테이블은 과거의 테이블, 세 번째는 그늘 속에서 빛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는 테이블, 네 번째는 용서의 테이블, 다섯 번째는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테이블,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별의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그때마다 루카를 만났고 이리스는 나이도 알 수 없는 루카에게 마음이 흔들립니다.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만이 행복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 행복이란 대조의 게임이니까. 감정의 스펙트럼 한가운데로만 헤엄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본질을 경험할 수 없어. 이게 우물의 교훈이야. 하늘이 광활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때로는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 (p.53)

 

소설 속에서 루카는 그가 읽었던 일본 소설(제 생각에는 하루키 소설 '태엽 감는 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을 빗대어 이 이야기를 합니다. 마법 같은 카페에 드나든 일주일 동안 이리스의 삶에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동물보호소의 신문 광고를 보고 강아지를 입양하고, 그 동물보호소에서 십대 시절 짝사랑했던 올리비에르를 만나기도 합니다. 카페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리스의 부모님과 같은 날 사고를 당한 루카는 이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이리스의 부모님을 대신해 그녀를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특히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거의 공황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견딜 수 없는 우울이 몰아치고 한 점 빛도 통하지 않는 어둠 속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입니다. 삶조차 의미가 없어집니다. 단지 그렇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삶의 소중함에 대해, 현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고 빛과 같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인생을 이해하려면 과거를 바라보아야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려면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p.150)

 

뭉클한 감동이 있었던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이리스에 빗대어, 또는 루카의 말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다고 느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이리스처럼 모든 것을 잃고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졌다 느껴질 때 소설 속에 나오는 아래 문장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죽음은 한 번도 열심히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슬픈 일이지요."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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