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일입니다만 풀릴 기미가 조금도 없는 걸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됩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여건도 그렇고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부의 정책도 그닥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는 듯 보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도 그럴진대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에 가깝습니다. 취업 준비생이나 신입사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찌 사나 싶은 게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게 됩니다. 게다가 취준생들이 그동안 힘들여 쌓았던 스펙들도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젊은이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 듯합니다. '脫스펙'을 선언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 스펙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을 꺼내들었다지요.

 

직무 경험과 관련한 에세이를 요구하는 회사가 늘어났는가 하면 현대자동차의 입사 희망자는 지원 이유와 역량 소개 2000∼3000자, 인생의 가치관과 구체적 입사동기를 각 1000자씩 써야 하며,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상반기 인턴공모에서 26개 항목 8200자 분량을 요구했다는데 이 정도면 단편소설의 절반 분량을 요구하는 수준입니다. 자소서 난이도가 높은 은행의 경우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오죽하면 은행 이름과 신춘문예를 결합해 ‘신한문예’ ‘우리문예’ 식으로 호칭되겠습니까. 인사담당자들도 취준생들이 제출한 방대한 분량의 자소서를 면밀히 검토하여 엄정한 점수를 매기려면 이제부터라도 문학적 소양을 길러 작가로 등단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소서 비중이 늘어난 것은 지원자의 직무수행 능력을 파악하는 동시에 허수를 솎아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비교해 기술하시오”라든지 “당사 브랜드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인지도를 제고시킬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 실현방안을 제시하시오”처럼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항목을 만났을 때 취준생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요. 취업 조건에서 글쓰기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며 그러한 추세는 유행처럼 번질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할 뿐 아날로그에 취약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현상은 형벌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노조를 비판한 새누리당 대표의 말에가수 이승환 씨는 “친일파 청산해서 재산 환수하고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산사업)에 엄한 돈 쓰지 않았으면 소득 5만 불 됐을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지요. 하나의 현실에 대해 그들이 갖는 생각과 처방은 너무도 다양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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