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되는 대로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단숨에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책에서 받는 이런 느낌을 중시하는 편인지라 때로는 책 한 권을 읽는데 두어 달이 걸리기도 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오래 걸려 읽었던 책은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아 결국에는 반드시 다시 읽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수중에 들어온 책도 나름의 운명이 있어서 그렇게 읽힐 운명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왜?'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책을 끌고 이리저리 다니는 바람에 군데군데 헤지고 닳아 중고서점에서 산 낡은 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김치국물과 같은 이물질이 지저분하게 묻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친근한 느낌도 덤으로 얻게 된다. 어쩌면 나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책과 그런 방식으로 서서히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먼 북소리>도 그와 같은 책 중의 하나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책을 다 읽는 데 아마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의 내용이 다시 궁금해졌고, 그때는 불과 며칠만에 후다닥 읽어냈었다. 그 후로도 여러번 책을 꺼내 읽었던 듯하다. 물론 그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로마의 겨울'을 읽거나 '스펫체스 섬'을 들춰보거나, 때로는 '오스트리아 기행' 부분을 정독하기도 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참, 할 일도 되게 없나보다. 여행기를 그렇게 여러번 읽어 뭐에 쓰려고'하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고.

 

이번에도 나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한 달 이상의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특별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존재했던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하루키도 어쩌면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3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정하고 로마와 그리스 등을 여행한 건 아니었지 싶다.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 확연하게 다른 점도 그런 것이다. 여행의 기간도 기간이려니와 작가는 자신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저 장소만 옮겨 간 채로 익숙한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생활을 일기를 쓰듯 기록한 책이 <먼 북소리>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흔하디 흔한 여행자가 아닌 '생활여행자'였던 셈이다. 작가의 본업인 글을 쓰면서.

 

"아침이 찾아오기 전의 이 짧은 시각에 나는 이처럼 죽음의 기운이 고조됨을 느낀다. 죽음의 기운이 먼 파도 소리처럼 내 몸을 떨게 하는 것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나는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조금씩 생의 깊숙한 곳을 향해 내려간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려간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의 중심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는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 바로 앞의 어둠 속에서 죽음도 또한 동시에 심하게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p.221)

 

작가는 이 시기에 가끔 번역을 하고, 장편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썼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먼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삼십대 후반의 작가는 타국의 낯선 곳에 터를 잡고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그이 아내와 함께 말이다.

 

"여성은 화를 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으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화내고 싶을 때 제대로 화를 내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 (p.79)

 

<상실의 시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에게 큰 전환점을 맞게 한 소설이었다. 그가 작가로 전업한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은 물론 베스트 셀러 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인터뷰를 기피하고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을 지극히 꺼리는 작가의 성향으로 볼 때, 작가로서 유명세를 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소설이 10만 부 팔리고 잇을 때는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받으며 지지를 얻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상실의 시대>가 백 몇 십만 부나 팔리고 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때가 내게는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p.357)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생각했던 건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가 부각된 시점이었다. 하루키는 자신의 책 <먼 북소리>에서 이탈리아의 국민과는 달리 조르바를 닮은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진지한 면이 있다고 썼었던 게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벼운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즐겨 읽는 이유는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책의 절반 이상을 화려한 사진으로 도배를 하거나, 현지 가이드처럼 유명 관광지 위주로 설명을 한다거나,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애수에 젖어 의미도 통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 대다수 여행기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처럼 가벼운 일상들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러다 언뜻언뜻 여행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시선이 나타나곤 한다.

 

"당신들은 그리스는 관광자원이 풍부하니까 관광에 중점을 두어 나라를 발전시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그런 식으로 만들면 매우 위험합니다. 국가재정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안정된 국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p.395)

 

하루가 멀다 하고 봇물처럼 쏟아지는 여행 에세이 중에서 진품을 찾아내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성능 좋은 디지털카메라 하나 들고 한 두어 달 여행하면서 블로그에 간간이 올렸던 글로 사람들의 시선을 웬만큼 끌었다 싶으면 귀국하자마자 책으로 출간하는 작금의 현실이 원망스럽다. 전업 작가들의 입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하루키 에세이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의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삶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자신의 위치를 문득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을 읽는 짧은 순간만큼이라도 움켜쥐었던 삶을 잠시 내려 놓고 두 손을 가벼이 놀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는 게 뭐 별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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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21 21:4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두세 번 읽은 거 같은데요
꼼쥐님 리뷰를 보니 다시 또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꼼쥐 2015-08-22 14:44   좋아요 0 | URL
가끔 읽어보면 맘에 드는 문구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때로는 그 문구들이 바뀌기도 하구요. 참, 재밌는 책입니다. 생각할 꺼리도 많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