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민음사 모던 클래식 72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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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일이지만 이 책이 말하는 바를 파악할 수 없다. '말하는 바'라고 하기 보다는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 소설의 개요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이건 숫제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프랑스 소설의 모호성보다 더 희미하게 다가왔다. 이런 소설을 만나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독서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간혹 지나친 호승심을 느끼곤 하는데, 이를테면 작가가 독자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아무리 꽁꽁 숨겨두었다 할지라도 나는 기필코 그 열쇠를 찾아내어 작가를 엿먹이고 말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 싸움에서 내가 승리했다고 할지라도 누가 크게 기뻐하거나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곤 한다. 단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책을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하여 읽는 경우가 있다. 시간을 무한정 낭비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 책을 단 한 번 읽었을 때는 '이게 뭥미?' 하는 느낌밖에 없었다. 정말 그랬다. 그렇다고 이 얇디 얇은 책을 설럴설렁 읽었던 것도 아니다. 하나하나의 단어에 대해 어떤 상징성이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려는 나름의 시도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읽어서인지 소설을 이루는 전체적인 맥락이나 구조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젠장, 나는 작가에게 지고 말았다는 열패감을 감출 수 없었다. 책이 얇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해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책의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읽어나갔다. 간혹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던 문장들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처럼 내 시선을 붙잡았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시간은 더 걸렸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이것이다!' 생각할 만한 강한 느낌이 없었다. 근 일주일 동안 책의 순서를 신경쓰지 않고 제멋대로 읽었다. 예컨대 '1부 샤비'를 읽고 '4부 카롤리나'를 읽는다거나 '2부 알렘'을 읽은 후 '5부 튀라'를 읽는 식이었다. 때로는 '3부 발레리아'만 하루 종일 읽었다.

 

'뭔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읽으세요?'하는 질문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받았는지... 사람들은 내가 이 책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책을 손에서 놓기가 못내 아쉬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도통 뭔 내용인지 알 수 없어서 그래.', 변명할 수 없었다.

 

2010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타이무르 압둘와하브(Taimour Abdulwahab)라는 남성의 자살 폭탄 테러를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이 책은 이민 2세대인 작가에게도 각별한 작품인 듯했다. 전 세계에서 일상처럼 흔한 일이 되어버린 테러, 그와 함께 확산되는 인종차별주의와 이슬람 혐오주의, 그리고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백색테러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소수자, 약자, 혹은 혐오 대상자의 불안과 공포, 그 밑바탕을 이루는 정신적 기조에 대해 주인공 아모르를 통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아모르, 한 가지 기억해 둬. 나는 홀을 향해 걸어갔다. 증오는 증오로 멈춰지지 않는 법이야. 신문 1면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접근 금지 테이프, 연기, 그리고 제목이 보였다. 증오는 오직 사랑으로만 극복될 수 있어. 이게 영원한 규칙이야." (p.41~p.42)

 

소설은 친구 샤비가 주인공 아모르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작된다. 술에 취한 채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던 새벽에 말이다. 대화의 내용은 논리를 벗어난 듯 모호하다. 마치 술에 취한 두 사람이 각자 상대방의 얘기는 배제한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곧 이어 알렘의 전화를 받고, 또 발레리아의 전화를... 주인공이 전화를 받는 대상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는 장소 또한 계속해서 바뀐다. 클럽에서 집으로 집에서 다시 테러 현장으로 시내로, 다시 집으로... 그러나 주인공의 동선 역시 구체적이지 않다. 실제와 의식 사이의 어느 한 지점인 듯, 현실과 의식이 한데 뒤섞인 플라즈마의 상태인 것처럼 혼란스럽다.

 

"나는 그의 머리색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 이걸로 충분해. 그래서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나의 걸음은 납이었고, 나의 눈은 네온이었고, 나의 팔은 비소였다. 그리고 경찰들이 등지고 서 있는 그 남자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는 나의 형제였다." (p.117~p.118)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도, 적과 친구의 구별도, 심지어 이곳과 저곳의 경계 또한 구별하기 어렵다. ‘주류 사회’에 속한 이민자의 삶은 그 경계를 더 모호하게 한다. 공포와 경계심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네 발을 지녔건, 날개가 달렸건, 비늘이 있건, 아니면 털이 있건 간에 개개의 생명의 고유함에 대해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P.107)

 

작가는 그 모든 상황을 전통적인 서사적 기법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아모르가 처한 상황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그리고 주인공이 스쳐가는 익숙한 환경을 주인공 아모르의 의식이 아닌, 작가 자신의 의식을 통과하여 흐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소설을 '나'(아모르)에 의해 전개되는 1인칭 시점이 아닌, 작가 자신의 의식을 통과하여 배출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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