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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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월 초순이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발표 소식이다. 수상 작가의 작품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매년 그맘때만 되면 괜히 설렌다. 그러다 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해지지만 말이다. 그것은 마치 가을을 타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나로 하여금 한순간에 부르르 끓어 올랐다가 미처 열기가 다 가시기도 전에 다른 쪽으로 관심이 쏠리게 하거나 나른한 일상의 흐름 속으로 가볍게 빠져들도록 부추긴다. 그러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기다리게 된다. 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노벨문학상에 실망하면서도 한국 작가의 수상을 간절히 바라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지만.

 

나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문학계에 몸을 담은 사람도 아니지만 한국 작가 중 누구라도 좋으니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바라 마지않는다. 그렇게 목이 빠져라 간절히 바라는 까닭에 나는 매년 실망하고, '왜 우리나라 작가만 상을 타지 못하나?' 곰곰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학계의 몫이겠지만 나의 어쭙잖은 판단으로는 '대한민국의 작가들이 대체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체면에 신경을 쓰는 탓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예술의 대부분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숱한 감정들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영감으로부터 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이 어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나?'하는 말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던 탓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몸 속 깊숙이 숨기게 된다. 며칠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언제부턴가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우리처럼 유교적 질서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왜냐하면 예술가는 조직의 목표나 타인의 일희일비에 무작정 대응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의 영감에 반응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능한 사회 구성원은 될지 모르겠으나 위대한 예술가의 길과는 점점 멀어지게 될 뿐이다. 내가 우리나라 작가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사회적 잣대에 비추어 한 겹 걸러낸 후 글로 옮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곤 한다. 게다가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모든 예술의 원천이 되는 사랑 말이다. 예술가라면 어떤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과감하고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사랑의 감정을 대한민국의 작가들은 많이도 숨긴다. 사랑 앞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마땅하거늘 한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나는 숱하게 보았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언제 찾아올지 기약 없는 영감보다는 순간을 불사를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비록 노벨 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삶과 진실'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니 에르노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한다. 이 말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흠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것을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이다. 1991년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졌던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이 책 <단순한 열정>에서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p.73)

 

작가는 사랑에 빠진 여느 여인처럼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넋이 나간 듯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온 신경이 쏠린다. 그러나 막상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 너무도 초조한 나머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그가 떠나고 나면 그의 전화만 무작정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된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 후 자신에게 남겨진 추억과 감정의 흔적들, 작가는 그 기억들을 반추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그녀의 고백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코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코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p.22)

 

"그 사람의 질투는 나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증거라는 생각에,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 질투의 증거로 생각되는 것은 탐욕스럽게 기억해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크리스마스 휴가에 여행 떠날 거야?"라는 그 사람의 물음이 그저 흔한 일상적인 물음일 뿐이지 내가 누구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회적으로 하는 질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31)

 

"『우리 둘』은 사드보다 더 외설스럽다."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이 책은 시작된다. 포르노의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고 작가는 예감한다. 역자 후기까지 합쳐도 채 80쪽이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에서 나는 작가의 노고를, 깊은 고뇌를, 그리고 어떠한 편견이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깊이 새겼다. 그것은 800쪽에 이르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삶의 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는 일반인의 도덕적 판단에 맞서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는 점이다. 예술을 도덕적 가치로 가두는 순간 독자는 책에서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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