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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별이 내게 말했다
멜리사 달튼 브래드포드 지음, 김수민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세계 공통의 언어는 '슬픔'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슬픔에 빠진 한 사람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 또는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슬픔의 층위가 서로간의 친밀도에 따라, 그 시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슬픔은 누구에게나 쉽게 감지되고 얼굴과 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슬픔의 빛깔로 인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는 별개로 가슴과 가슴을 잇는 침묵의 언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학 입학을 앞두었던 그해 여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미처 예감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손주들을 끔찍이 위하셨던 할머니.
어려웠던 살림살이와 시도 때도 없던 아버지의 술주정에 몸시 힘겨워 하셨던 할머니는 이따금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한동안 날품을 팔았고 돌아오실 때면
언제나 손주들 용돈을 챙겨 오시곤 했었다. 그랬던 할머니였기에 가족들이 감내해야 할 상실의 고통은 깊고도 질긴 것이었다. 그해 가을의 어느 날,
지인의 부탁으로 외국인 한 명과 만날 일이 있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과 함께 관공서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었다. 일종의 통역일이었지만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원과 외국인이 의도하는 바를 적당히 설명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서툰 영어 실력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만났던 외국인의 따뜻한 손길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깨가 축 가라앉은 채 간신히 일을 마쳤던 나를 그는
무작정 근처의 한 음식점으로 이끌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그는 몇 번인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심이 섰다는 듯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무었 때문에 그렇게 힘이 없느냐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적인 질문을 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었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처음 만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얼마 전에 할머니를 잃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모든 게 엉망이라는 것을 떠듬떠듬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자신의 큰 손으로 감싸 쥐고는 자신도 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날 처음 만났던 생면부지의 한 외국인으로부터 나는
진심으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우리가 헤어지고 난 뒤에도 그는 내가 몹시 걱정이 되었던지 나의 집으로 전화를
했었고, 특별한 용건도 없으면서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나와 몇 번이나 더 만났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서서히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대학생활에 온전히 적응하게 되었지만 그날의 일만큼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별이 내게 말했다>는 작가인 멜리사 달튼 브래드포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아들을 잃고 극심한 슬픔에 빠져들었다가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관개수로에서 수영을 하다가 소용돌이에 휩쓸려 죽었을 때, 그것도 두
번이나 살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을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파커가 결국 코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댄은 분노와 괴로움으로 몸부림쳤다. 그런
다음 세상에서 분리되고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이 모든 것, 이 말도 안 되는 삶과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특히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기 위해 씨름했다. 더 이상 뭐가 중요하겠어? 안전한 사람이 어디 있어? 누가 신경이나 쓰나?"
(p.352)
나는 지난해 여름 나의 아버지와 작별했다. 평생을 술로 사셨던 분이다. 그러다 기력이 쇠하여졌을 때는 당신에게 남겨진 삶을 오롯이 병원에서만 허비했다.
15년 이상의 기나긴 세월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었다. 그 지난했던 시간들이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은 당신의 인생을 위해서,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찾아왔던 상실감과 무력감은
나을 수 없는 고질병처럼 내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슬픔의 짐승'을 만나게 되고, 이 짐승은 우리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일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존재하는 짐승에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타인의 슬픔의 짐승과 마주쳤을 때 어떤 사람들은 회색곰과 대면한
것처럼 반응한다. 비명을 지르며 부리나케 도망을 치는 사람들도 잇고, 처음에는 몸이 얼어붙었다가 까치발을 하고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비극적으로 짐승의 쇠사슬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p.146)
언젠가 나조차도 삶과 작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떠나겠지만 나는 내가 겪었던 두 번의 경험(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하여 나는
가족과,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상실의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지, 또는 슬픔을 감추고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때일 수도 있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저 허둥대거나
피하기만 하는 건 아닌지,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의 오해를 사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느 날, 별이 내게
말했다>는 글을 쓰는 작가이자 시인이고, 학자이며, 네 아이의 엄마였던 저자가 네 명의 자식 중 큰아들을 잃었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쓴 책이다. 우리는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슬픔은 우주 공통어인 동시에 침묵 속에서 이해되는 유일한
언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