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하여 그 줄기를 따라 경과를 되짚어 가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예컨대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처럼 근원을 말하기 어려운 것에서부터 "설사 내가 그렇게 했기로서니 네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한 건 너무한 거 아냐?"라는 가벼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약간의 억울함만 느껴져도 그 일을 반드시 되짚어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제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새김질 하는 바람에 한 번 느껴으면 족할 억울함을 영원회귀의 억울함 속에 가두어 놓곤 한다. 때로는 전적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열 중 한둘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라고 그렇게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소연도 통하지 않던 억울한 일을 나라고 왜 겪어보지 않았겠는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또는 형이나 누나들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숱하게 당해보았다. 어찌나 억울한지 밤을 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다. 가만가만 되짚어 생각해도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나만 억울하게 당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럴라치면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더 화가 나곤 했다. 그야말로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곁에 당사자가 있다면 뭔 일이라도 곧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류가 있게 마련이다. 내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이 벌어졌을 당시의 사람들이 다 참가하여 그때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요, 순전히 나의 의도대로 편집되고 왜곡된 사건을 약간의 동정심을 등에 업은 내가 혼자서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시간과 배경도 달라진 채 말이다. 그 가상의 공간에서 제 아무리 억울하다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운명이려니...'하고 잊는 게 백 번 낫다. 그러면 단 한 번의 억울함으로 끝나지 않겠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된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곱씹어 생각한다면 결국에는 자신만 손해를 본다. 나는 '인생이란 좋았던 일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나빴던 일을 망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잊으려 노력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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