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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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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오해를 받아본 적이 있으신지. 나는 있습니다. 최근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그닥 유쾌한 일도 아닐 텐데 어쩜 그리 해맑게 말할 수 있냐구요? 세상사라는 게 다 오해와 용서의 결합체이니까요. 누군가를 끝없이 오해하고 또 끝없이 용서하다 보면 우리 인생도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따금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이 오해하고 또 많이 화해하라고 말입니다. 칼부림이 날 정도의 깊은 오해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오해를 푸는 것도 좋은 경험일 테지요. 우리는 어차피 내가 아닌 너가 될 수 없는 까닭에 완전한 이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화가 당신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신문에서 자주 목격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극단적인 대립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불필요한 논쟁처럼 읽히지만 지구상의 두 세력은 이미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웃자고 쓴 글인데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빚어지는 크고 작은 오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올바른 대처 방법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만약 있다면)약간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용서는커녕 내 목숨까지 요구한다면? 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는군요. 자신의 운명을 탓하는 것 외에는.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극단적인 오해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1947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열세 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갔고, 1975년에 '그리스머'로 문단에 데뷔합니다. 1981년에 쓴 '한밤의 아이들'은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잘 나가는 소설가에서 도피자의 신세로 전락한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그가 발표한 '악마의 시'로 인하여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는 전 세계의 무슬림을 향해 그를 처형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수백명의 무슬림이 모여 ‘악마의 시’를 불태우고 폭력시위를 벌이며 살해 위협을 가했습니다. 작가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었죠. 그로부터 작가는 13년간의 기난긴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책 <조지프 앤턴>에서 자신의 도피생활 중에 겪었던 여러 일들을 독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입니다. 뜻밖의 결과에 당혹해 하면서도 작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 듯 보입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호메이니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루슈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더 비판적으로 쓸 걸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겻다. 그 말은 진담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이 이슬람교에 특별히 비판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p.17)

 

연도별로 기술된 그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그가 태어난 1947년에서 '악마의 시'가 출간된 1988년까지의 기록인 1부 '파우스트의 계약'을 제외하면 모두 1년 단위로 부를 나누어 2002년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2년은 작가가 무장 경찰의 보호 속에서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으로 은신처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끔찍했던 시절에 종지부를 찍었던 해였습니다. 2001년 9ㆍ11 테러로 자신에 대한 처형 명령이 실질적으로 해제돼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해가 2002년이었지요. 작가는 그 해에 비로소 '조지프 앤턴'에서 다시 '살만 루슈디'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루슈디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보았다. 블라디미르 조이스, 마르셀 베케트, 프란츠 스턴. 그런 식으로 짝을 지어 목록을 만들어보았는데 모두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우스꽝스럽지 않은 조합을 발견해 나란히 적어보았다. 콘래드와 체호프의 이름. 그것이 앞으로 11년 동안 쓰게 될 이름이었다. 조지프 앤턴." (p.219)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이 나에게 각별했던 까닭은 따로 있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을 미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솔직해지려 했다는 점입니다. 계속되는 살해 위협의 공포 속에서 살면서도 연쇄적 불륜과 그로 인한 네 번의 이혼, 돈과 명성을 향한 끝없는 욕망,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철없음 등을 그는 자기조롱과 희화화까지 동원해가면서 대담하게 펼쳐 보입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인 양 다루기 위해 1인칭인 '나'를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 ‘루슈디 씨’ 또는 '앤턴 씨'라는 3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 이유를 “자기 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작가의 도피 생활은 힘겨웠던 듯합니다. 10여 년간 앞마당에 신문이나 우편물을 집으러 나갈 수도 없었고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거나 가족을 만날 수도 없었으며 거처를 끊임없이 옮겨다녀야 했던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떠올렸습니다. 애인에게 던졌던 농담 한마디로 인해 자신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던 루드빅이 살만 루슈디의 삶과 비슷하다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는 벌써 죽었어야 했다. 누가 봐도 당사자인 그는 납득하지 못한 게 분명했지만, 그거야말로 모두가 기사로 내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리는 헤드라인이었다. 부고는 이미 쓰여 있었다. 비극이든 심지어 희비극喜悲劇이든 등장인물은 초안을 고쳐 쓸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 있길 고집했고, 더 나아가 의견을 내고 변론을 하고,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믿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길 고집했으며 또한 (사람들이 그런 만용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자신의 인생을 조금씩, 고통스럽더라도 한 걸음씩 되찾길 고집했다." (p.539~p.540)

 

악의적인 의도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은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오해에 종종 부딪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매번 화를 내고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의 귀를 하릴없이 두들겨야만 할까요? 우리는 어쩌면 탄생과 더불어 오해를 경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리가 불편하다고 우는 아기를 서툰 엄마는 배가 고파 운다고 오해하거나 같이 놀자는 뜻으로 빼앗았던 친구의 장난감 때문에 빚어진 싸움 등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오해를 불러일으켰음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오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작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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