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막 벗어나는 지점에는 벚나무 한 그루가 우뚝하다. 수년째 방치된 공터에 밭을 일구어 마을 노인들은 해마다 배추나 열무 등의 푸성귀를 심었다. 마치 주인이 없는 땅인 듯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숲으로 이어지는 그 공터의 한 귀퉁이에 제법 우람한 벚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아침마다 공터를 지나 저 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으니 이제는 주변 풍경에 제법 낯이 익을 법도 한데 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묏등의 잔디가 푸릇푸릇 변하고 청설모 수선스레 내달리는 이 즈음에 내가 놀라는 이유는 딱 하나, 겨우내 있는 듯 없는 듯 지워져 있던 벚나무가 홀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며 나 여기 있노라 시위라도 하려는 듯 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것이다. 백색 조명이라도 밝힌 양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벚나무에게 나는 '장하다' 칭찬 한마디 건네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매일 마주하는 풍경인데 산을 오를 때는 눈에 띄지도 않던 벚나무가 산을 벗어날 즈음에만 환하게 빛나는 까닭에 나는 매일매일이 첫날인 양 놀라고 또 놀란다.

 

어제 아침에도 나는 빗속에서 환히 빛나는 벚나무를 보며 화들짝 놀랐었다. 수백, 수천의 백색 꼬마전구를 일시에 켠 듯한 벚나무의 찬란한 위용! 어슴푸레 밝아 오는 여명에도 줄기는 보이지 않고 허공에 꽃만 무성한 듯한 비현실적안 대비! 나는 요즘 심장이 오그라드는 '놀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보면서도 매일이 새롭고 나 또한 새삼 놀라는 걸 보면 나는 벚꽃을 보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벚꽂을 그저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벚꽃을 읽는 재미로 산을 오르고 한번 읽은 벚꽃을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고 새삼 놀라는 나는 이 봄 루터의 말을 떠올려 본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이고 명상이고 시련이다." 봄이면 누구나 꽃의 종교에 경배하고 기도하며 삶의 시련을 견뎌내는가 보다. 벚꽃을 읽는 계절, '초조해하는 것은 죄'라고 카프카는 말했는데 나는 짧은 이 계절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아니,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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