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낙엽이 떨어진 보도 위로 모르는 발자국들이 끝없이 흘러간다. 짓눌린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낙엽은 이내 와삭 부서지거나 이따금 되살아난 낙엽이 찬바람에 몸을 뒤챈다. 그 헛헛한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몹시도 책이 고플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책이 고픈 게 아니라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 둔 내 유년의 추억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디어 책을 읽던 기억. 이불 속의 퀴퀴한 냄새가 내 발에서 나는 것인지 청국장 뜨는 냄샌지... 그렇게 길디긴 겨울이 느리게만 흘러갔었다.

 

나는 그때 '셜록 홈즈'나 '괴도 뤼팽' 등 그 또래의 아이들이 즐겨 보던 추리소설에 홀딱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저녁잠이 많으셨던 할머니는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당신의 어린 손자를 향해 매일 밤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먹을 게 귀했던 시대에 할머니는 손주들 어디 나가서 배는 곯지나 않는지, 궁색한 저녁을 먹은 어린 손자가 잠들기 전에 혹여라도 허기가 지는 건 아닌지 언제나 애면글면하셨다. 그러니 늦게까지 책을 보는 손자가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을 터, 하룻저녁에도 몇 번씩 '그만 자라' 말씀하셨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을 안고 소파에 엎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를 읽었다. 어깨가 아플라치면 등을 대고 눕고, 그마저도 힘들면 다시 일어나 앉으면서 밤이 늦도록 책을 읽었다. 이맘때의 밤이면 늘 들리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나는 사실 장르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팬도 아닙니다. 추리소설이라면 오히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지금 읽으면 약간 촌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책들을 더 좋아합니다. 예컨대 '셜록 홈즈 시리즈'라거나 '괴도 뤼팽'이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말입니다. <질풍론도>도 서재에서 뽀얗게 먼지만 쌓이는 게 안타까워 이제서야 읽을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소파에서 몇 번인가 몸을 뒤채면서도 결국은 다 읽게 되더군요. 추리소설이 다 그렇듯 끝까지 읽기 전에는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든 법이지요.

 

사건의 발단은 다이호 대학 연구실에서 불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탄저균 배양 샘플을 분실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K-55'로 명명된 그 생물 병기를 훔친 범인은 스키장 인근의 설산 외진 곳에 그것을 묻고 표식으로 너도밤나무에 테디 베어를 걸어둔 사진을 찍어 연구소장에게 메일로 보냅니다. 물론 거액의 돈을 요구하지요. 그러나 범인은 교통사고로 그만 죽고 맙니다. 범인이 'K-55'를 숨겼던 장소는 미궁에 빠지게 되었고, 연구소에서 불법적으로 진행된 일이었기에 연구소장은 선뜻 경찰에 알릴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만년 선임 연구원이었던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 마니아인 중학생 아들을 대동하고 설산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추적 과정에서 구리바야시가 다리를 다치는 등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결말은 싱겁게 끝납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반전이나 기발한 추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죠. 물론 독자의 허를 찌르는 전개가 두어 번 나타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선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단숨에 써내려갔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눈에 띄는 휴지(休止)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를테면 작가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몇 달이고 끙끙대면 나중에 이어 붙인 뒷부분은 앞부분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그런 게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몰입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요. 물론 그동안 형성된 마니아층과 작가의 인지도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세밀한 묘사도 없이 대화와 스토리 라인만으로, 그것도 광대한 스케일을 무대로 하지도 않는,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재로 독자들을 이만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이 소설의 전체 스토리에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구리바야시와 그의 아들 슈토에게 눈길이 갔던 게 사실입니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구리바야시, 눈에 띄는 능력이나 탁월한 처세술도 없이 만년 선임 연구원의 직책에 머물러야 했던 주인공은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아버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게다가 일에 치여 가족 여행조차 변변히 다녀온 적 없고, 아빠로서 아들과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어 본 적 없는, 젊은 시절에 즐겼던 취미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그럼에도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불쌍한 아버지의 모습 말입니다. 구리바야시는 'K-55'를 찾기 위해 갔던 스키장에서 아들 슈토와의 벌어진 간극을 실감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 보편성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징만 잡아 빠르게 전개시키는 그의 방식은 마치 세부 묘사에 치중하지 않고대상의 중요한 성질이나 특징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는 크로키 화가를 닮아 있는 듯합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책을 읽은 탓인지 졸음이 몰려온다. 방금 전에도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쏘였음에도. 이제 계절은 겨울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젊어서는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겨울이 마냥 기다려지곤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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