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의 <혼불>을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객지로만 떠돌던 나그네가 아주 잠시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한 번쯤의 귀향을 결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요즈음 주로 최근에 쓰인 책들만 읽어 왔었고, 그렇게 한동안 유행하는 작가의 책들에 익숙해지면 어느 날 문득 나그네의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책이 떠오르곤 하는 법이죠. 다들 그렇지 않나요? 예컨대 <혼불>이나 <토지>, <아리랑>, <임꺽정> 등과 같은 책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채 오래도록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런 책들 말입니다.

 

제 예감이 그닥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책들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저는 한때 이런 책들을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읽어댔었죠. 제 주변에서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구요.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의 어느 날이나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한겨울의 늦은 밤에 썩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요즘 사람들이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혼불>을 다시 펼쳤을 때 제 솔직한 느낌은 답답함이었어요. 누군가 한쪽 발로 제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체중이 아주 많이 나가는 그런 사람이. 자신이 지나온 길임에도 과거의 한 시점을 돌이켜 보면 '조금 촌스럽다'거나 '왜 그렇게 살았을까' 답답해지게 마련이지요. 아주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혼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 대한 제 생각도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제가 직접 살아보지도 못한 조금 더 먼 과거의 일이니 오죽할까요.

 

어제 내리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군요. 사람들의 발걸음도 100그램쯤 가벼워진 듯 보이구요. 하늘은 여전히 잔뜩 치푸린 듯 보이고, 희끄무레한 풍경 속으로 차들이 질주합니다. 저는 다시 <혼불>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군요. 효원과 강모, 강실이가 살았던 조금 먼 과거로 말입니다. 휴일은 그 과거 속에서 살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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