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장맛비처럼 내리던 비가 저만치 물러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비가 지나간 후의 대기는 얼마나 투명한가! 나는 허공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조용히 참는다. 절제된 욕망은 실상 자신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제 영역을 넓혀갈 뿐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자가증식하는 세포처럼. 그것은 마치 파괴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에너지를 응축하는 지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알 수 없으리만치 조금씩조금씩, 그러다 어는 순간 '꽝' 하고 폭발하여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처럼.

 

오후가 되자 하늘은 다시 어두워졌다. 바람이 불고 힘없는 낙엽이 소리도 없이 흩날렸다.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는다.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을 철저히 배제한 한 권의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나는 이 작품이 오직 그의 머릿속에서만 창작되었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축출된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그의 내면에 꾹꾹 잠재되었던 욕망이 어는 순간 틈새를 비집고 나와 한 편의 소설이 되기까지 그는 무척이나 오래 견디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배설행위이다.

 

잠재된 욕망을 누군가에게 쏟아냄으로써 작가는 쾌감을 느낀다. 절정의 쾌감. 나는 오르가슴으로 치닫는 작가를 상상한다. 작가는 결국 죽음을 생각한다. 명멸하는 욕망의 찌꺼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삶이 죽음의 이면인지, 죽음이 삶의 이면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얼굴이 비칠 듯 반짝이는 승강기의 전면과 어둠 속에서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승강기의 뒷면처럼 삶과 죽음은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죽음의 뒷면이 삶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둡고, 습하고, 더럽고, 어느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승강기의 뒷면처럼.

 

"퍼포먼스는 달라요. 저는 직접 만나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죽음과 애욕을 보죠. 제가 그날 그들의 눈 속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제 작업은 즉석에서 바뀌곤 하죠. 예술의 목적이 결국 아름다움을, 그것도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대면하고자 하는 욕구라면, 퍼포먼스가 아닌 다른 모든 예술은 가짜이고 타협이고 부질없는 불멸에의 욕망, 그 찌꺼기들이지 않아요? 퍼포먼스에 대한 모든 공격은 참된 아름다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인간들은 불멸에 대한 강박 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을 박제하죠. 그들은 죽은 예술에 길들여진 노예들이에요." (p.113)

 

저녁이 되자 다시 잠깐 맑은 하늘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이내 오렌지빛 석양과 함께 사라졌다. 루이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으로 시작된 소설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에 이를 때까지 아름다우면서도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3부 <에비앙>에서부터 작가의 의식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현실을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타인(또는 독자)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수음을 하던 소년이 그 장면을 제 어미에게 들킨 것처럼. 작가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또는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을 때의 소설은 이미 아름다움과는 멀어지게 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처음은 섹스와 죽음을 도발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의식이 꿈의 저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깔린 하늘은 목화솜처럼 넓게 펼쳐진 구름으로 뒤덮였다. 오늘 밤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 별은 현실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허구 속에서 존재했던 것처럼. 소설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소설 속에서 죽음을 택한 세연과 그녀와 관계를 가졌던 C와 그의 동생 K, 행위 예술가 미미,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나. 나는 고민 상담을 하며 의뢰인의 자살을 도와주는 죽음 안내인이며, 동시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가이다. 이를테면 나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사르다나팔의 죽음>에 등장하는 사르다나팔인 셈이다. 팔베개를 한 채 죽음의 향연을 바라보는 바빌로니아의 왕 사르다나팔. 나는 유디트(세연)와 미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 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 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는 않는다." (p.140)

 

밤이 깊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이면을, 죽음과 같은 또는 꿈과 같은 아름다움과 대면하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잉여적 삶이라 할지라도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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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이 소설에서 기억할 만한 문장들을 기록해 둔다. 단지 참고용으로.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의 지상 덕목이다." (p.8)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p.10)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p.16)

"가끔 허구는 실제 사건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 실제 사건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구차해질 때가 많다. 그때그때 대화에 필요한 예화들을 만들어 쓰는 게 편리하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에 배웠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즐긴다. 어차피 허구로 가득한 세상이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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