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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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1923 ~ 1996)의 소설 <깊은 강>은 사유가 깊어지는 요즘과 같은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이다. 이를테면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질서와 숨결이 느껴지는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 깊숙이 따스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소설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장편 소설인 <깊은 강>은 작가가 말년에 신장병으로 복막 투석 수술을 받느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퇴고를 거듭한 작품인 만큼 애착도 깊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생전에 그는 자신이 죽으면 관 속에 자신이 쓴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을 넣어달라는 유지를 남겼을까.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소베'라는 인물은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공감하거나 가슴 언저리가 뜨끔거릴 만한 전형적인 남편상이 아닐까 싶다. '이소베'는 막연히 평균 수명대로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다 뜻밖에도 아내가 먼저 암 선고를 받는 상황을 맞는다. '이소베'의 아내는 임종 직전에 남편에게 에사롭지 않은 유언을 남긴다.

 

" "반드시......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찾아요...... 날 찾아요, 하는 아내의 마지막 헛소리는 생생한 잔상처럼 귓속에 남아 있다." (p.32)

 

아내와 애틋한 애정 표현을 자주 하거나 사랑이 지극했던 것도 아닌 '이소베'는 아내의 열정에 찬 유언 한 마디를 좇아 인도로 떠난다. 인도의 바라나시 근처 마을에 사는 한 소녀가 전생에 일본인으로 살았다는 정보를 들고 말이다.

 

"하지만 외톨이가 된 지금, 이소베는 생활과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생활을 위해 사귄 타인은 많았어도, 인생에서 정말로 마음이 통한 사람은 단 두 사람, 어머니와 아내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285)

 

소설은 여행사의 패키지 인도 여행을 위해 모인 5인의 인생 역정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전쟁세대인 이소베, 누마다. 기구치와 전후세대인 미쓰코와 산조 부부. 대학 시절, 카톨릭 신자인 오쓰를 장난삼아 유혹했다가 무참히 버렸던 미쓰코의 자책과 기구한 삶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신이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사랑하는 아내의 환생처를 찾아 나선 이소베, 패전 후 미얀마의 정글에서 굶주림과 질병의 멍에에 갇혀 죽어간 동료들의 구원을 빌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이구치, 자신을 대신해 구관조가 죽어갔다 생각하고 새를 찾아 방생의 길을 마련하려 인도 여행길에 오른 누마다. 대학 시절 사귀었던 오쓰를 버리고 조건에 맞는 남자와 결혼했던 미쓰코는 사제가 되기 위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오쓰를 찾아 신혼여행도 프랑스로 떠난다. 무신론자이면서 냉소적인 성격의 미쓰코는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병원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지내기도 하였지만 오쓰가 믿었던 신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녀는 결국 오쓰를 찾아 인도의 바라나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인생에는 미처 예상할 수 없는 일,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떻게 인도까지 올 마음이 내켰는지, 스스로도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따금 인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p.169)

 

사제가 된 오쓰는 인도의 빈민가에 머물며 생명이 다한 거리의 가난한 순례자들이나 병자를 갠지스 강의 화장장이나 병원으로 옮겨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미쓰코는 오쓰와의 만남에서 그녀와 오쓰의 벌어진 거리를 실감한다. 그리고 오쓰가 믿는 신이 그녀로부터 오쓰를 완전히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오쓰가 믿는 신은 심판하거나 저주하는 신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범신론적'인 신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일찌기 세례를 받았던 작가 자신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쓰는 미쓰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하느님)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p.280)

 

미쓰코는 아크사르 바가바티 사원의 지하에서 본 여신 칼리와 차문다 상을 보면서 인간의 위선, 증오와 배신, 전쟁과 학살, 선과 악, 종교와 현실을 생각한다. 언젠가 나는 <십팔사략>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인간의 본성은 실로 잔인한 것이며,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과, 결국 악함이 선함을 이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선한 사람을 통하여 깊이 감화되지 않는 한 어떤 노력으로도 구제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미쓰코가 오쓰를 통하여 변해가듯이.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주장을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라고, 미쓰코의 마음의 어조는 어느 틈엔가 기도풍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그녀는 이 기도 흉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316~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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