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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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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감나무의 잎사귀로부터 진한 생명력을 느꼈다고 하면 이상할까요?  아무튼 나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설마 죄가 되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지금 바흐의 '영국조곡'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마치 봄 햇살에 겨워 온 몸을 부르르 떠는 은사시나무 잎새의 떨림 같습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조용한 하루.  아,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다들 그렇게 부르는)'불금'입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두 번 읽었습니다.  머리가 나쁜 탓이죠.  꼼꼼히 읽는다고 했는데도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훌훌 넘기며 다시 읽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번째는 필요한 부분만 읽고 지나쳤으니 한 번 반쯤 읽은 셈입니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의 편지들을 엮은 서간집입니다.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품의 이곳저곳에서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을 여러 번 접하셨을 줄 압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정작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은 단 한 편도 읽지 않았으면서도 어느 순간 친숙한 이름이 되더군요.  하루키는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챈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한 권에 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잘 모르는(어쩌면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것은 때로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다분하니까요.  솔직하다는 건 결국 모든 오해를 감수하겠다는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챈들러가 그의 독자, 여러 작가, 편집자, 기자, 감독 등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 중 68편을 골라 엮었습니다.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 그만의 위트와 유머, 30년을 해로한 아내의 죽음에 맞선 사랑 등 서간집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간 많은 동정과 위로와 편지들을 받았지만 당신의 편지는, 게속되고 있는 상대적으로 쓸모없는 삶을 위로하기보다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점에서 특별했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말한 모든 것이며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녀는 삼십 년 동안 내 심장박동이었지요.  정말로 아내에게 보여줄 만한 가치가 있거나, 아내에게 헌정할 수 있는 작품을 쓰지 못했던 것이 나의 가장 큰 후회이자 이제는 해 봤자 소용없는 후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책을 쓰려고 했죠.  생각은 했지만, 쓰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쓸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216~p.217)

 

책의 구성은 챈들러의 작품론을 모아 놓은 1장과 다양한 작가들에 대해 논하는 2장, 할리우드 시절을 담은 3장, 그의 작품에서 탐정 캐릭터로 유명한 필립 말로에 대해 말하는 4장, 그의 아내와 고양이 등 일상을 담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1장의 작품론 부분을 읽으면서 챈들러 자신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고집을 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얻은 지혜란, 글쓰기 기술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빈약한 재능이나 재능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표시일 뿐이라는 믿음과 상통하니까요."     (p.37)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p.194)

 

책을 읽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챈들러의 생각은 어쩌면 그만의 스타일로 남을지도 모르겠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평범함이란 너무도 익숙하고 벗어나기 힘든 유혹이어서 만일 누군가가 그동안 나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어떤 것을 말할 때, 그 사람은 그저 나보다 우월하다는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고 말지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방식을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말입니다.  그는 언제나 우리가 속한 영역의 밖에 홀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는 채.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전문직 두세 종을 제외하면, 이 시대에 한 남자가 어느 정도 타락하지 않고, 성공이란 언제 어디서나 부정한 돈벌이이게 마련이라는 냉혹하고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서 적절한 풍족함을 누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죠."    (p.171)

 

사실 이 책은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는 어느 작가 지망생이 읽어야 할 책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그곳으로부터 끝없이 탈출하고자 했던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삶의 기록이자, 자신만의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했던 자유인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챈들러 스타일은 작가 챈들러의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우리와는 조금 다른, 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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