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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 리턴드 The Returned
제이슨 모트 지음, 안종설 옮김 / 맥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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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싶으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지난 인생이 남들보다 더 혹독했다거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을 건너뛴 다른 시공간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 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지금의 사람들이 좋을 뿐이다.
제이슨 모트의 소설 <더 리턴드(The returned)>는 죽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되살아나는 상황을 가정하여 쓴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벗어나기 힘든 감정이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점차 흐릿해지게 마련이고, 우리가 사는 동안 그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소중함을, 삶의 의미를,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상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카디아는 미국에 있는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그곳에는 일흔이 넘은 노부부 루실과 해럴드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제이콥이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이콥은 1966년 여덟 살 생일에 강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랜 세월 동안 부부는 제이콥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들의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고 있었다. 이렇듯 평온했던 부부의 삶을 뒤바꾼 것은 아들 제이콥이 여덟 살의 나이로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악마 - 그들의 특정한 악마 - 가 눈물이 글썽이는 갈색 눈동자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부모와 헤어져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아이 특유의 안도감을 가득 담은 채 여전히 작고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그들의 현관 앞에 나타났을 때,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살아난 루실의 단단히 닫혔던 마음은 사무국에서 나온 잘 차려입은 남자 앞에서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p.21)
그러나 죽었던 사람이 이 세상으로 귀환하는 것은 비단 제이콥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귀환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고,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또한 그 누구도 왜, 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이 기적인지, 또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급기야 국제 귀환자 사무국이 결성되었고, 정부 차원에서 귀환자들을 관리하게 되었다. 아카디아의 초등학교에 귀환자들을 모아 놓고 감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귀환자 수용소가 세워진 셈이다. 해럴드는 어린 제이콥을 수용소에 혼자 둘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청하여 수용소에 남는다. 그 순간에도 귀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새로운 귀환자들은 사무국 요원들과 군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난다. 사람들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귀환자의 가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마찰과 갈등도 심해진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마음은 제이콥이 1966년 8월의 그 여름날 물에 빠져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녀석이 말을 하면, 내 귀는 그가 내 아들이라고 말해. 내 눈도 마찬가지고. 그 오래전, 까마득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해럴드는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p.222)
귀환자 사태는 세상이 의도하고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해럴드와 제이콥이 떠난 빈집에 홀로 남은 루실은 그들을 위해 매일 음식을 준비하여 날랐다. 그러던 중 1963년에 죽었던 윌슨 일가족이 귀환하여 루실의 집에 함께 머물게 된다. 윌슨 일가는 루실과는 먼 친척뻘이었다. 귀환자 사태가 지속됨에 따라 귀환자의 수가 증가하고 수용되지 않은 귀환자도 증가하면서 산 사람들과의 마찰은 점차 심해졌다. 이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귀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렇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한 까닭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정부도, 성직자도, 과학자도, 그 누구도.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이렇다. 귀환자의 가족이면서 귀환자에게 우호적인 해럴드 가족,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무국 요원 벨러미와 윌리스 대령, 성직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피터즈 목사, 정상인들을 지지하며 귀환자를 적대시 하는 프레드 그린 등. 나는 소설의 뒷부분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소설일 뿐이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 단지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어떤 것들이 한순간에 뒤바뀌었을 때의 혼란과 갈등, 그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탐욕과 비열함은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부의 역할도.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정부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기적의 치료법을 제시해야 하고, 필요하면 단호한 군사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p.80)
우리는 죽음 저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다만 모름으로써 죽음을 그저 수용할 뿐이다. 예컨대 죽음 저편의 세계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 만약 우리가 상상하는 지상천국이라면 현실의 삶을 서둘러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속출할 테고, 만일 그것이 불구덩이 속의 지옥이라면 사는 내내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죽음에 대해 모름으로써 기대와 공포의 중간자적 입장에 놓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절묘한 신의 한 수이다. 그렇다면 죽었던 자의 생환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작가 제이슨 모트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우리에게 또 하나의 철학적 난제를 던져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