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더할수록 명절을 보내는 것이 더욱 힘겹습니다.

마치 내게 남겨진 에너지를 각혈을 하듯 어딘가에 모두 게워내고 돌아온 느낌입니다.  오가는 도로에, 사람들과의 대화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새겨진 고단함에,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감동이 없는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들은 나로 하여금 잠시도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삶이란 3차원의 실재(實在)에 심각(心覺)을 더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에 마음을 더하는 일, 삶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싶습니다.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은 삶에서 죽은 시간이자, 지워진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흔하디 흔했던 감동이 썰물처럼 스러지고 있음을 시시각각 느낍니다.  어쩌면 나는 지워진 시간 속에서 그림자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살아 보면, 인생은 외롭게 혼자인 게 제 모습인 듯합니다.

제 그림자건 제 내면이건 제가 저를 길동무 삼아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혼자 걷는 데 익숙해지고 태연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내가 바로잡을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하시로 휘둘립니다.  내 말과 행동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또 그렇게 상처를 받고 많이 외로웠겠지요?  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다는 건 참으로 서글픈 노릇입니다.  아내의 처진 어깨가 내 눈에 아프게 박힙니다.  이런저런 풍경들 앞에 그저 담담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가족들과 헤어져 빈 숙소로 돌아온 오늘,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진한 고요를 우려내고 있습니다.

비 그친 하늘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먼 산이 우련하여 마음마저 흩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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