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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철학자 - School Library 04
알퐁스 도데 지음, 강승민 옮김 / 종이나라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하루 종일 목 안이 칼칼했었다. 중국발 스모그가 몰려 온 탓이리라. 그렇다고 중국에 항의도 할 수 없는 처지이고 보면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산물은 입에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독가스나 다름이 없는 스모그가 몰려 와도 어떤 대책도 없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이런 오염이 비단 자연환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 우리가 먹는 음식도 예외는 아닐 듯싶다. 오염된 환경에서 자란 식재료에 각종 향신료와 첨가물이 뒤범벅 되어 이제는 옛맛과의 비교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한 권 한 권 읽어나갈수록 작금의 오염된 환경에서 생겨난 최근의 책들이 그 오염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고 지저분해졌는지 새삼 깨닫곤 한다. 화려한 비유나 미사여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인 묘사 등으로 인하여 책을 읽는 독자는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눈길이 쏠리게 된다. 책을 쓰는 작가들도 이러한 현상을 익히 인지하고 있을 터,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타락하고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독자의 얕은 지식이나 유행을 탓함으로써 자신들의 허물을 합리화시키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의 세계, 이를테면 자연환경이나 문명의 이기, 또는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등의 심각한 오염은 눈으로 쉽게 확인될 수 있지만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고전을 읽지 않는다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글의 오염도를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요즘 아이들이 사오십 년 전의 된장국 맛과 지금의 된장국 맛을 비교할 수 없는 이치와 비슷하다. 어떤 기준점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내가 어린 시절에 즐겨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는 요즘, 나는 현대 작가들의 글이 너무도 타락했음을,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 글을 즐겨 읽는 독자들의 영혼도 얼마나 심하게 오염되고 있는지 조금쯤 알 것만 같다.
최근에 나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꼬마 철학자>를 다시 읽었다. 내가 알퐁스 도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별>이라는 작품을 읽은 후였다. 그때는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흡사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가슴속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었다. 조금의 시차는 있었겠지만 <별>을 읽은 여운이 채 사라지기 전에 나는 <꼬마 철학자>를 읽었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담은 <꼬마 철학자>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부피가 두툼한 이 책을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던 것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고, 이 책의 주인공인 다니엘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는 그리움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새로 출간되는 많은 책을 읽었었고, 물과 공기처럼 담백한 글들은 내 관심에서 차츰 멀어졌었다. '퓨전'이라는 명목으로 본래의 맛을 잃어버린 요즘의 음식에 내 입맛이 길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합성 조미료와 향신료를 제거한 음식을 다시 먹어본다면 그 밋밋함에 질색을 하며 물러나지 않을까?
"생제르맹 데 프레 광장의 성당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6층 건물의 지붕 밑에는 내 가슴을 저리게 하는 창이 하나 나 있다. 바로 형과 내가 살던 방의 창이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지난날 창가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거리를 내려다 보면서 먼 훗날 등 굽은 할아버지가 되어 처량하게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띄우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 같은 자크 형과 그 높은 곳에서 살 때 생제르맹 종탑의 낡은 시계는 어김없이 매 시간마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려주었다. 젊음과 패기로 넘쳐 났었던 그 시절로 단 몇 시간 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종을 울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었다. 온 정열을 다해 시를 썼던 시절이었다." (p.262)
이 책의 어디에서도 화려한 비유나 단번에 마음과 눈을 사로잡을 만한 현란한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저 담담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나른하고 지루한 오후의 시간들이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화려하지도, 모험과 스릴이 넘치는 것도 아님을 작가는 조용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상한 꿈을 꾸어도 그저 웃어넘기고 마는 사람이라면, 뭔가 미래의 일을 예감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불안에 시달려본 적이 결코 없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철통 같은 두뇌로 오직 현실만 인정하고 미신 따위는 떠올리지 않는 냉철한 실증주의자라면, 그래서 그 어떤 경우에도 초자연적인 것은 믿지 않고, 논리로 설명해낼 수 없는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제부터 펼쳐질 남은 이야기들은 영원한 진실만큼이나 사실이다. 여러분은 믿지 않겠지만......" (p.460)
진리와 도덕에 대한, 삶의 진면목과 사랑의 가치에 대한 기준점마저 사라진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체념하기에는 아까운 너무도 소중한 것들이 우리 곁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오염되고 훼손된다는 사실이 그저 섬뜩할 뿐이다. '아, 글도 오염되는구나!'하고 느꼈던 나의 생각이 허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원인도 모른 채, 거부하지 않고, 좋든 싫든 시대의 변화를 다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