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이를 더할수록 점점 답변이 궁해지는 질문이 있다.  내 안에 경험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해마다 쌓인 지식이 그 자리를 넓혀갈수록 답변은 더욱 궁색해진다.  이따금 이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0"으로 수렴하는 지수함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으면 종국에는 답변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군가에게 들려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누군가로부터 채근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 질문을 화두처럼 끼고 살았다.  그게 뭔고 하니 "내 생각이나 주장 중에 오롯이 내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나 될까?"하는 물음이다.  이를테면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이나 어느 책에서 읽었던 지식, 또는 사회적 통념으로서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을 제외하고 오직 나만의 발견, 나만의 생각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나는 이 질문 앞에서 해가 갈수록 점점 자신을 잃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여러 이유 중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저자의 생각에 굴복되고 종속되기 일쑤여서 이 질문이 생각날 때마다 독서의 무용론에 빠져들곤 한다.  그렇다고 책을 멀리하는 것만이 능사냐 하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기본 지식의 습득을 도외시하거나 전폐한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세뇌 현상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엘리트로 치부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종속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다른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 노예화된 그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도 수십 명은 말해줄 수 있다.

 

독서를 하면서 드는 이런 자괴감 또는 속절없음으로 인해 누군가에게서 그만의 주장이나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말을 듣거나 읽을 때마다 괜한 부아가 치밀고 때로는 까닭없이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를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사 일본법인의 사장으로 취임했던 저자는 비즈니스계를 통틀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가 권하는 일명 '초병렬 독서법'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독서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초병렬 독서법'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쌓아두고 다양한 책을 동시에 섭렵하는 방식이다. 즉 거실과 침실, 화장실, 부엌 등 가는 곳마다 여러 권의 책을 놓아두고 동시에 읽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선정에 있어서도 장르가 다른 책, 예를 들어 학술서적과 소설, 시집과 경제서적처럼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극단적인 것들을 권한다.  저자는 또한 베스트셀러만 따라 읽는 사람은 원숭이와 같다고 말하는데 읽는 독자에 따라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모든 책을 완독할 필요는 없다고도 조언한다. 즉 무조건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Brillat Savarin)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맞혀보겠다.”  이 말은 책에도 적용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컨대, 비즈니스 실용서만 읽는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부자가 되는 요령을 알려 주는 책이나 성공 비법을 소개하는 책만 편식하듯 읽는 사람은 장담하건대 중산층 이하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만일 당신이 “내 취미는 독서고요, 최근에 읽은 책은 『해리포터』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구제불능이다!”라고.  다른 사람이 터득한 요령이나 성공 비법을 따라 하기나 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사람은 동물원의 원숭이보다 나을 게 없다. 원숭이도 인간을 곧잘 따라 하지 않는가. 남이 알려 주는 기술에 의존하는 한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힘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p.6 - p.7  '프롤로그' 중에서)

 

일본인 중에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롯하여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의 저자인 마쓰오카 세이고,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쓴 이토 우지다카와 이 책『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의 저자인 나루케 마코토 등 그동안 독서법에 대하여 내가 읽었던 책도 여러 권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나 독특한 발상에서 볼 때 다치바나 다카시와 나루케 마코토는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 보인다. 

 

"나는 딸아이가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일류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자기 인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아이가 꼭 정치가나 의사와 같은 화려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테러리스트가 되면 어떠랴.  체 게바라처럼 낭만과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라면 그것도 근사한 일 아닌가(모든 혁명은 테러로부터 시작되었다!)."    (p.109 - p.110)

 

어떤 행동이나 말 또는 주장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방식과 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 하여 괜한 트집을 잡거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난하고 멀리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열등의식이라면 열등의식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이제는 제발 그런 짓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히려 나와 의견이 다른,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그들의 주장을 듣고 싶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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