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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히 시간적 역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시간에 채색된 과거, 시간이 지워버린 과거, 또는 현재의 내가 그 나이 때에 이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여러 모습들로 인해 여러 관계 속에서의 객관적 나를 오롯이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내가 끝없이 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억하는 주체가 현재의 나이므로 그 주도권은 온전히 현재의 나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거란 현재의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나에게 객관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애당초 부질없는 짓인 듯 보입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은 작가가 된 서른두 살의 현재의 내가 열여섯에서 열아홉이었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평하는 이 작품은 현재의 내가 지난 과거에 대해 얼마나 이기적이고 냉정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작품 속에서도 현재의 나는 그때의 사건을 발설하는 것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입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겠지요. 작가가 된 서른두 살의 나는 처음부터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과거의 나에 대해 현재의 내가 하는 변형과 왜곡을 이해해 달라는 뜻이겠지요. 그런 까닭에 나는 작품 속의 과거의 나에게 연민과 동정의 눈길을 아니 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 한 열여섯의 나는 외사촌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합니다. 무료함에 지쳐 두엄자리를 뒤적이다가 쇠스랑에 발바닥이 찍힌 곳, 그 쇠스랑이 보기 싫어 끝내 우물에 빠뜨렸던 곳, 유신체제와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바깥세상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 그렇지만 겨울에도 추웠던 기억이 없는 곳, 열여섯의 나는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납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있거라. 나의 고향. 나는 생을 낚으러 너를 떠난다." (p.28)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도시로 온다'고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도시에 익숙해진 현재의 나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외사촌 언니와 나는 직업훈련원을 마치고 구로1공단의 어느 전자회사에 취직합니다. 그리고 큰오빠와 함께 구로공단역 근처의 서른여섯 개의 방이 딸린 '외딴방'으로 이사합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열여섯의 나는 힘든 도시의 삶을 견뎌냅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산업체 특별학급의 학생으로서 공부도 하며 힘겨운 나날을 버텨내는 것이죠. 마음 속으로는 오직 도시로 나오던 그날 밤 외사촌이 보여준 사진집 속의 아름답게 잠든 새를 꼭 보러 가겠다는 기약을 하며 말입니다.
외딴방 1층에는 희재언니가 삽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산업체 특별학급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막과 같은 도시에서 그녀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같은 직장의 남자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결국 남자는 떠나고 맙니다. 시골로 휴가를 다녀오겠다던 희재언니는 그 외딴방에서 자살을 합니다. 희재언니는 내게 문을 잠거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희재언니의 방에 자물쇠를 채웁니다. 현재의 나는 그때의 기억을 몇 번이고 외면하려 합니다.
"그곳을 떠나와서도 언니와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그 방과 비슷한 방을 보게 되면 내 가슴은 뛰고 숨이 막히곤 했지. 갑자기 멍해지거나 안절부절못했지. 주위가 산만해지고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어. 때때로 갑자기 어린애가 돼버린 것같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그 사람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어......" (p.327)
현재의 나는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 번 망설이고 방황하여 소설을 완성합니다.그리고 마침내 어느 해안도로에서 새들을 보게 됩니다. 고독과 절망 속에서 마음으로만 기약했던 그 다짐을 이룬 셈이죠.
"새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바라본 바다 끝, 그 위의 어린애 같은 하늘, 나의 갇혀 있던 옛일들이 흩어지는 구름 속에 섞이는 걸 느꼈다. 그 자유로운 기억의 끝에서는 어느 해안가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물가의 바다 위에서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데려가려는 모양이었다. 저만큼 자동차 안에서 아이의 아빠가 자동차 클랙슨을 빵빵- 누르고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아이는 해안에서 멀어졌다. 기억할는지. 이 해안에서 울었다는 걸. 이 해안에서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걸." (p.423)
열여섯의 나이에 외딴방으로 걸어들어가서 열아홉의 나이에 뛰어나온 그 사 년의 삶과 좀처럼 화해가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고백합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네 삶은 과거의 나와 끝없이 부딪치고 갈등하다 제 풀에 지쳐 조금씩 화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나와 싸우는 것이 참 우습지 않나요? 왜 그때는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입니다. 과거라는 교과서에는 언제나 물음표가 달리고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바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