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었다.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오늘 다시 읽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요, 단순히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자고 책을 두 번씩이나...  남들이 들으면 내가 이 책을 낸 출판사로부터 두둑한 보수라도 받는 줄 알겠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만한 글재주를 지닌 주제도 못 되거니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내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막 잠이 들려는 순간에 문득 이 책의 제목이 갑자기 떠올라 선잠을 깨우더니 비몽사몽 간에 머릿속을 뱅뱅 맴을 돌다가 종국에는 또릿또릿한 정신으로 나를 되돌려 놓고야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체념하듯 일어나 이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했건만 책의 내용은 한동안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 채 겉으로만 돌았다.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이런 짓거리를 몇 번을 거듭하다가 내가 하는 꼴이 하도 한심해서 결국 잠이 들고 말았는데, 결국 나는 오늘 서평이라도 쓰자는 심산으로 다 읽고야 말았다.  아마도 이 서평을 다 쓸 즈음에는 작가처럼 '왜 쓰는가?'의 문제만 고스란히 남아 내 머리를 다시 어지럽히겠지만.

 

"그렇다면 왜 쓰는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과 부정은 계속됐지만,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99년쯤이었다.  그 즈음 나는 내게 돈도 명예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나 문학을 쇄신하는 사상이 담기지도 않을 게 분명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퇴근한 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p.66)

 

글을 쓴다는 것, 자신만의 감정과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종국에는 누군가에게 읽히고야 말것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  최소한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우주 밖의 또 다른 우주에서 머물며 잠깐 동안의 요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한참이나 떨어진 고독의 밤길에선 청년기의 열정과 아픔, 많은 의문과 분노, 그리고 언뜻언뜻 유년기의 희미한 기억들이 내가 스치며 걷는 담벼락에 아이맥스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p.132)

 

작가 김연수에게 청춘이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가장 위대한 물음표'였나 보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하늘을 날 준비를 하듯 청춘은 고통과 불안이 병존하는 시기인 것을.  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이 그립고, 가끔 눈물을 찔끔거리게 되지만 그런 청춘의 시기가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양 거리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여자애와 헤어지면서 그 어마어마햇던 나만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는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힌 슬픔만으로는 부족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바깥의 슬픔에까지도 눈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신문을 보다가도, 연속극을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중생들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던 관음보살의 눈물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윤리 시간에 배웠듯이 측은해서가 아니라 관음보살 자신의 몸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마음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몸에서 비롯한 눈물이었다."    (p.139)   

 

책의 내용은 작가 김연수가 지금의 나처럼 자신이 사는 폼세가 무척이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 때, 책을 읽고 한시를 읽으며, 때로는 하이쿠를 읽으며 그때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 적은 것들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어렵고 한심한 때일수록 과거의 기억은 햇잎처럼 더욱 푸르러지게 마련이다.  작가의 글은 떠오르는 상념들과 낡은 기억들로 이루어진 일기에 가깝다.  가끔은 두서없이 쓴 글이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실 때가 있다.  벽이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감추거나 꾸미려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레 감동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비록 그의 글이 난삽하여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행간에 드러나는 진실의 향기는 독자의 숨구멍으로 쉽게 빨려든다.  

 

시간이 솔방울처럼 구를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의 시간 속으로 누군가 풀벌레의 작은 날갯짓이라도 좋으니 작은 파동을 일으켜주길 간절히 바랬던 사람들은 안다.  슬픔은 시간의 강을 무심히 건너지 말라는 빨간 신호등이라는 것을.  요즘 남과 북의 극한 대치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사람들은 오히려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릿해지곤 한다.  외신에서는 곧 전면전이 일어날 것처럼 연일 급박한 소식을 전해 오는데 정작 당사국의 국민들은 오히려 평온하다니...  나는 그들이 전쟁의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두 번째로 밀려나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남북한의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문제도 체념하듯 아스라히 비껴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눈물에도 꽃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쯤 되지 않을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그때의 슬픈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눈물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아닐까?  이 책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아픈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새끼손가락을 깨물어야 했다.  왜 나는 그때 눈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무심히 걸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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