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사랑하는 법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 작가에 의해 씌어진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늘 마주치던 평범한 일상과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면으로 만났을 때 잔잔한 감동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누가 강요하거나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책의 저자인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래쳐는 2002년 '당신을 더 사랑하는 법 배우기(Learning to love you more)'란 웹사이트를 개설한다.  그리고 이곳에 과제를 내기 시작한다.  가령 '누군가의 주근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써보기', '태양을 사진에 담기', '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 '최근에 했던 말다툼 적어보기','5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책 다시 읽어보기', 중요한 날 입었던 옷을 사진으로 찍어보기'등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닥 어렵지 않은 과제들이다.

 

과제가 진행되는 동안 국적, 나이, 성별, 직업을 초월한 사람들이 마음을 담은 5,000여 개의 답변을 보냈으며, 2009년 5월, 마지막 70번째 과제 '작별 인사하기'로 마감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오롯이 느끼게 되고, 웹공간에 올려진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두운 방 한 귀퉁이에 놓인 자신은 개별적 존재로서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작은 상처들을 확인할 때 우리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제'라는 형식에 참여함으로써 마음을 열고, 타인과 공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쯤 덜어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갈수록 유리 조각처럼 파편화되는 우리가 '과제'라는 단일한 목표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모자이크와 같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류라는 거대한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공간에 위치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지...  

 

"이윽고 그가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고요.  그의 손을 잡자 그는 갑자기 온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손을 잡는 게 싫은 것 같아 손을 놓으려 하자 그는 더듬거리며 내 손을 찾았습니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한동안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의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노래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도 건넸습니다.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언젠가 내가 떠날 차례가 오면 누군가 내 손을 꼭 잡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과제 31: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캘리포니아에 사는 익명의 간호사)

사람들의 호응과 공감에 힘입어 과제 결과물들을 모아 뉴욕 휘트니 미술관, 휴스턴의 오로라 픽처 쇼 등에 전시를 하기도 했으며, 세계 각국에서 책으로 출간하였다고 한다.  과제들 대부분은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과 인터뷰해보기(과제 59)'라든가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등 녹록지 않은 과제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정부에 대해 이야기해보기(과제 61)'와 같은 정치적인 과제들도 있다.

 

과제 44에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 과제 만들어보기'가 있다.  나는 이 과제에 대해 한동안 곰곰 생각해보았다.  교도소에 방문하여 모르는 수감자 면회해보기?  생각나는 은사에게 편지하기? 아침 운동 중에 만난 사람과 나란히 걸어보기?  딱히 맘에 드는 게 없다.  그래도 즐겁다.  용기를 내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비교되고 비교하면서 '하찮고 보잘것 없음'이라고 단정지었던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게 한다.  세상에 가치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70억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사실, 나는 은둔자에 가까운 타입이다.  전화번호부에 전화번호도 싣지 않으며, 누가 찾아와도 아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 성격인지라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서 내 이름을 밝혀야 하는지에 대해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익명'으로 하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몇 분 동안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내 이야기의 지은이는 '행인 2'가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내 이름을 밝혔다."    ('참여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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