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아직 새였을 때 시공 청소년 문학 10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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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앉아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소란스럽지 않아 귀를 기울이면 마치 꽃이 피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마르야레나 렘브케!  발음하기 쉽지 않은 작가의 이름이다.  1945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작가는 연극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 가 뮌스터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다고 한다.  핀란드 작가의 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울창한 숲과 크고 작은 호수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  어쩌면 핀란드식 사우나와 잘 갖춰진 교육제도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내게는 '돌이 새였다.'고 생각하는 동생이 한 명 있었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과거형의 문장이다.  읽기도 전에 짠한 슬픔이 밀려온다.  동생의 이름은 페카.  제왕 절개로 태어난 동생은 합지증과 사시가 있었고 머리는 비딱했다.  보통 사람과는 조금 특이하게 태어난 아이.  동생은 헬싱키의 어린이 병원 '라스텐린나'로 보내졌다.  라스텐린나는 핀란드 말로 '어린이 궁전'이라는 뜻이다.

 

"'제왕'이니 '어린이 궁전'이니 하는 말은 우리에게 굉장히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아이들만 사는 궁전을 그려 보았다.  그 궁전에는 딸기처럼 빨간 실크 드레스를 입은 어린 공주들과 이끼처럼 푸른 벨벳 바지에 진짜 진주알이 반짝이는 하얀 조끼를 받쳐 입은 어린 왕자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p.8)

 

페카는 2년 동안 어린이 궁전에 살면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았고, 걷기 시작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페카는 걷지 않고 언제나 바닥을 기어만 다녔다.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고기 조각을 삼킨 페카는 다시 병원에 가야 했고, 그 이후 페카는 다시 두 발로 걸었으며 말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페카. 페카는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가 앉는 의자와 자기 침대, 양말과 양탄자, 할머니의 앞치마와 엄마의 냄새, 그리고 아빠의 수염도 사랑했다.

 

"난 숲을 사랑해.  난 자작나무를 사랑해.  전나무랑 소나무도 사랑해.  그 나무들은 향이 좋으니까.  그리고 나는 꽃도 사랑해.  꽃은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알록달록하니까.  풀은 초록이라서 사랑하고, 버섯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사랑해.  나는 다람쥐랑 개구리랑 애벌레도 사랑해.  하지만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은 새랑 돌이야.  왜냐하면 돌도 옛날엔 새였거든."  (p.14 - 15)

 

특별했던 페카도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페카의 친구들은 페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 뒤 공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도중에 누군가가 페카를 밀어 우물에 빠기도 하였고, 손목시계가 탐나서 주인 몰래 집으로 가져오기도 하였다.

 

"다음 날 페카는 시계 주인에게 시계를 돌려주었으며,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단 말은 걔 듣기 좋으라고 했을 뿐이야.  그래야 누나가 좋아할 테니까.  하지만 난 사람들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러면서 페카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p.42-p.43)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다 잔뜩 물을 먹은 페카가 내뱉은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페카는 '물고기가 울어서 바다에 소금이 녹아 있다'고 했다.  가난했던 페카의 부모님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페카뿐만 아니라 페카의 누나와 형들 그리고 페카의 동생들은 모두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날 날만 기다리던 중 페카가 아팠고 의사는 백혈병이라고 진단했다.  부모님은 이민을 포기했고 떠날 준비를 하느라 이미 살던 집도 팔았던 부모님은 결국 시골로 이사를 했다.  학교도 그만두게 된 페카는 그곳에서 부모님이 기르는 닭과 돼지와 놀았고, 나와 산책도 하거나, 동생 시오나를 돌보기도 했다.  웃지 않는 시오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페카 뿐이었다.  부모님은 페카를 치료하기 위해 신선한 간과 간유, 그리고 철분 약을 먹였고 페카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는 듯 보였다.  가족들은 페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번 아날리사가 페카에게 물었다.  "넌 언제 죽니?"  페카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나 죽을 것 같아."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페카의 엉뚱함과 특이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선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p.95)

 

그러나 페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던 의사는 나중에 오진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페카를 위해 소를 한 마리 선물했다.  그 소가 송아지를 낳았고, 얼마 후 페카의 동생 '야코'도 태어났다.  어느 날 내가 핀란드 일주를 계획하고 여행을 떠날 때 페카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볼 거니까 또 만나자고 인사하는 거야.  내가 죽을까봐 겁낼 필요 없어.  누나, 내 생각에 난 절대 안 죽을 것 같거든.  난 돌이 됐다가 새로 변할 거야.  밤이 돼서 달이 뜨고 그래서 슬픈 생각이 들면 지금 내가 한 말을 기억해.  그리고 혹시 돌에 맞더라도 겁먹지 마.  그건 막 새가 되려는 돌일지도 모르니까."    (p.127)

 

페카는 그 뒤로 여러 해를 더 살았고 곂국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가족들은 작은 돌을 찾아서 '네케민'이라고 쓰고 페카의 무덤 위에 올려 놓았다.  네케민은 핀란드어로 '또 만나.' 라는 뜻이다.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장애를 결코 불행하다고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쓴 또 다른 작품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행복은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외롭고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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