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이응준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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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엔 무력한 갈증이 비둘기처럼 내려앉는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때론 터질듯 부풀어오른 기억의 풍선들이 약한 빗방울에도 '펑펑' 소리를 내며 의식의 빈 그릇에 소나기처럼 쏟아지기도 한다.  그리곤 금세 걸쭉한 수프처럼 엉긴 기억의 잔해들은 의식이 스쳐갈 때마다 펄펄 끓는다.  뒤죽박죽의 기억들이 몽글몽글 끓어 넘칠 때면 기포와 함께 원추형으로 봉긋 솟았다가 '폭'소리와 함께 터져서는 이내 공기중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꽃샘 바람과 함께 흩뿌리던 봄비 속에서 의식의 밑바닥에 눌어 붙은 기억의 알갱이들을 한움큼 건져 올렸다.  그리고 이응준의 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읽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작가가 있다.  나는 쌀쌀하게 굳은 하늘을 보며 아침부터 이응준을 생각했었다.  얼마 전에도 그의 작품<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그의 뿌리 깊은 우수와 텍스트를 관통하는 죽음에 대한 집착은 오늘 같은 날씨에는 더할 수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야기의 출발은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과장된 슬픔이 언뜻언뜻 스칠 때마다 거식증 환자의 토사물처럼 움찔움찔 뒤로 물러나게 했다.  이틀 후면 처음 갖게 된 '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나는 이삿짐을 싸고 있다.  책장을 들어내자 실먼지에 휘감긴 채 발견된 묵직한 노트 한 권.  나는 먼지를 쓰다듬듯 털어내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읽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그들과 내가 있었고, 그들과 내가 나눈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들과 나를 슬프게 만든 청춘과 운명이 있었고, 우리의 배경에서 끝없이 내리던 함박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색 바랜 일기는 자신이 기록하고 있지 않은 더 먼 기억까지 기어코 불러와 기묘한 악몽의 만다라를 완성하고 있었다."    (p.14-15)

 

그해 겨울, 모든 것을 잃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원했던 해군에도 신체검사에서 입대면제 판정을 받았던 내가 직행버스를 타고 무작정 떠나 다다른 곳은 서울 근교의 대학가인 가합동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카페 '하늘밥도둑'의 주인 '산타 페'를 만난다.  유명 미술대학 조소과 출신인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저는 인물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를 가진 그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지닌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가까워진다.  미친 이모의 벗은 알몸을 보고 황혼의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싼타 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같은 과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튼, 나는 녀석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어쩌면 하나도 아는 게 없었을 수도 있지.  체질적으로 녀석은 쓸데없는 관념들에 정의 내리기를 좋아했어.  아까 말했듯이 사랑이란 뭐다, 죽음이란 어쩌고 저쩌고다, 라는 식으로.  나는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내심 감탄하곤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뜻 모를 불안감이 소리 없이 고이곤 했어.  놈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 불안감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말이야.  나는 결심했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정의를 내리며 살진 않겠노라고.  너구린 너구리고 곰은 곰인 거지.  쥐는 쥐고, 비버는 비버인거야.  그러면 인생은 간단해지거든.  자살 같은 건 어리석은 일이지.  미친 짓이야.  없는 단어들에 관해 두툼한 사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불쌍한 법이야."    (p.108-109)

 

나는 '싼타 페'와 어울리며 '나그네들만 주인인' 그곳 가합동에 서서히 적응해간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대학의 명물인 '물귀신'을 만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미저리'도 만난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수인.  그녀는 야구를 좋아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어느 날 그녀는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야구용품을 모두 불사르고 환상만 좇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털어낸다.  그리고 얼치기 대학생활을 청산하고 장사라도 해보겠다며 대학을 떠난다.

 

수인이 떠나고 나는 며칠을 앓아 눕는다.  내가 앓고 있던 사이 '미저리'도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배경처럼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던 눈이 거짓말처럼 개인 어느 날 아침 '싼타 페'는 자신이 발견했다는 '아름다운 길'과 그 길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를 보여주겠다며 나를 잡아 끈다.  그곳에서 나는 그 '이름 모를 나무' 밑에 내 상처를 묻고 돌아선다.

 

첩의 자식이었던 나는 유난히 젊어 보였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열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다.  네 살 터울의 배 다른 형제 인하를 만났고, 밀교의 사제처럼 형을 존경했던 나는 형이 지녔던 아픔과 그로 인해 벌어진 모든 일들이 운명이었다고 수긍한다.  탐욕에 이끌려 모든 것을 잃고 허무하게 죽었던 아버지와 병으로 죽은 형의 여자 친구, 그리고 형과 자신의 어머니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 이후 형의 자살.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처럼 흘러갔음을 인정한다.

 

"지난 일은 그냥 지난 일이다.  상처가 남았다고 하지 말자.  상처는 '우리'라는 거대한 대륙에 놓인 작은 늪이나 웅덩이 같은 것일 뿐이므로.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상처지만, 높고 푸른 하늘 위에서 자유로운 새처럼 내려다보면,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상의 한 풍경일 수도 있으려니.  나는 아프게 흘러갔던 지난날들이 내 마음의 하구에 얼마나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삼각주를 만들어놓았는지를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그것이 내 불행의 전모였다."    (p.270)

 

이 작품은 작가의 나이 스물여섯에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앞부분에선 슬픔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과도하게 표출되는 듯 싶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투의 관조적인 자세로 서둘러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소설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시적 표현과 무리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에서는 작가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건 다 슬프기 마련이라는 작가의 주장처럼 그도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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