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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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웃겠지만 내가 농구공을 처음 만져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농구를 해보기는커녕 농구공조차 만져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형을 따라 도시로 전학을 했다.  형과 함께 자취를 했었는데 주인집에는 나와 동갑인 사내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손에 농구공을 들고 나타나 함께 농구를 하자고 했고, 농구가 처음이었던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채 학교 운동장의 농구 코트로 향했다.

 

농구공은 의외로 무거웠다.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했던 탓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농구가 처음인 나는 슛을 쏘는 자세도 엉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을 던질 때마다 공은 내가 의도했던 방향을 한참이나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쑤였다.  공을 주우러 이리저리 뚜어다녀야 했던 그 아이는 그마저도 힘들었는지 나와 골넣기 시합을 제안했다.  농구 골대를 중심으로 운동장에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놓고는 가장 끝쪽으로부터 자리를 옮겨가며 공을 던져 누가 더 많이 넣느냐 해보자는 것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 아이의 제안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억지춘향으로 시합을 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참혹했다.  그 아이가 서너 골을 성공시킨데 반해 나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날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반친구에게 한 달간만 농구공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농구를 그닥 즐기지 않았던 친구는 자신의 농구공을 선선히 내주었다.  그렇게 빌린 농구공으로 나는 꼬박 한 달간 슛을 쏘는 연습만 했다.  손에서 겉돌기만 했던 공은 서서히 손에 익어갔고, 그에 비례하여 내가 던진 공이 링을 통과하는 횟수도 점차 늘었다.  주인집 아이는 내가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였던 나는 그 시간에 조깅대신 농구를 하였고 아침잠이 많았던 그 아이는 내가 농구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후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나는 표정을 깊이 감춘 채 심심하면 농구나 하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웬일이냐는 듯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는 농구공을 들고 나왔다.  잠시 몸을 푼 후, 그전처럼 골대 주변에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리고는 이내 시함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내가 이겼다.  그 아이는 분을 못 참는 듯 보였다.  다시 하자며 몇 번을 맞붙었지만 그 아이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그 후에도 여러 번 농구를 같이 했지만 슛 대결에서는 번번이 내가 이겼고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컸던 그 아이는 그때마다 일대일 반코트 경기를 제안하여 그 분을 삭이곤 했다.

 

<공부하는 인간>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밖에 없다고 강하게 믿었었다.  언젠가 나는 다른 글에서도 썼었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시간만 자며 버텼었다.  그 혹독한 과정을 가능케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동양의 체면문화는 동양인들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족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고, 그것은 곧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제작진은 릴리, 스캇, 브라이언, 제니와 여러 아시아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동양의 체면문화가 동양인의 학습의욕, 교육열을 고취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p.143)

각 문화권의 공부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들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싶어 제작되었다는 KBS 1TV 글로벌 대기획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하버드 대학에 재학중인 4명의 진행자는 공부라면 내로라 하는 나라들, 예컨대 이스라엘, 인도,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구, 한국, 우간다 등을 돌며 각 문화권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부의 정의, 목적, 방식 등을 질문하고 직접 목격함으로써 공부는 과연 문화적.역사적 산물인가? 하는 문제와 그렇다면 동양의 공부와 서양의 공부 중 어떤 방식이 옳은 것인지, 더 나아가서 진정한 공부는 무엇인지를 심도있게 파헤치고 있다.

 

"'집단, 관계성'을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스스로를 인지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 차이는 두 사회의 지식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지식에 대한 상반된 시각은 공부방식의 차이를 가져왔으니, 결과적으로 동.서양의 공부방식은 '집단'중심의 동양 문화와 '나'중심의 서양 문화가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p.299)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쓴 기적적인 성취 이면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노력을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부모의 교육관도 다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지식의 습득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한국의 학생들이 노벨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한 번쯤 되짚어 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가족 중심의 공동체적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인과 우리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그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진리에 도전하고자 하는 교육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오늘날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입식 교육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더구나 우리와 비슷한 병역제도를 갖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던 반면 우리는 군대에서의 시간이 '죽은 시간'처럼 느껴지도록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안타까운 현실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식' 교육에서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공부는 인류 보편의 테마이자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 코드다.  따라서 공부를 보면 과거의 우리가 보이고 현재의 우리, 미래의 우리가 보인다.  그러므로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어도 공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미래에도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p.359)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가깝게는 개인의 행복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의 교육에 목을 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초등 4학년이 된 아들 녀석을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숙제를 다 못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지적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 숙제를 기어코 마저하는 것도 그렇고...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하고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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