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서간집에 깊이 끌리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이방인처럼 낯선 얼굴로 찾아오곤 한다.  그 생각은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옷에 묻은 먼지처럼 툭툭 턴다고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생각도 결국 나에게 속하는 것인데 정작 자신이 만들고도 만든 까닭을 모르니 답답한 일이다.  추측컨대 내가 서간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성향의 문제인 듯하다.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스포츠 중계보다는 동물의 왕국을 더 좋아하는 이상한 습성 말이다.

 

지난 설 명절에 교수를 하는 손윗동서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그분도 나와 비슷한 습성이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개그 콘서트를 보고도 뭐가 웃기다는 건지, 또는 적당히 웃으려고 해도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 건지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는 더했었단다.  그래서 TV는 숫제 보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동물의 왕국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점점 더 재밌어진다고도 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나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럼 시간이 날 때 뭐하세요?"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인즉슨 "그냥 책 봐."였다.  '이런, 염병할!  책이라니...' 나는 그 말을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뻔했다.

 

하도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인지라 사실의 기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가 보다.  그것이 비록 사실과 같은 허구인지, 또는 거짓과 같은 사실인지 그 경계의 구분이 애매하지만 말이다.  최근에도 나는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오래된 서간집을 읽었었다.  그뿐인가.  반고흐의 편지를 모은 <영혼의 편지>며 정약용의 편지를 모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등 서간집이라면 왠지 모르게 끌린다.

 

아무튼 서간집을 좋아하는 내가 또 서간집을 골라 읽었다.  여기에는 현대인의 엿보기 심리인 관음증적 증세가 한몫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 특별히 눈에 띄었던 이유는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공통적으로 유목민의 삶을 살면서 쓴 편지라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에서 떠돌이처럼 살았던 짧았던 시간이 생각났었다.  어느 곳에선들 자신의 몸을 편안히 누일 집 한 채 없을까마는 영혼은 언제나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떨게 되는 것이 외국에서의 삶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외로움을 피해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며칠씩 방에 갖혀 죽은 듯 살아보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 문득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고국에서 긴 여행을 떠나 '혼자'인 내가, 지금 왜 다시 '혼자' 여행을 왔는지 자문하니 몸서리치게 외롭더군요.  그리고 다음 날, 그 커다란 성당을 찾아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한참을 기도하고 고백했지요.  외롭고 또 외롭다고.  그러니 나를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루를 더 지내고 파티마를 떠나 다시 리스본을 지나 신트라sintra로 가서 혼자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태어나서 처음 선명하게 별똥별을 보았습니다.  여행의 끝에 참으로 많이 위로받는 기분이었어요."    (p.145-p.146)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서, 의사이자 시인으로서의 그들은 남들이 알 수 없는 연계가 있는 듯 보였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시절 나는 천상병 시인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서울대 상과대학을 중퇴한 천상병 시인의 시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나는 당시만 해도 천상병 시인의 이력을 알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작정 천상병 시인의 작품만 읽었다.  세상에 시인은 오직 천상병 시인만 존재하는 것처럼.  오죽하면 나는 지인으로부터 천상병 시인의 시집을 생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윤석군이 귀국을 하면 그간에 공부한 과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그 전문직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두 가지 길을 병행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평생을 걸어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묘한 보완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시인의 길을 오래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나는 편한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고난과 인내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인의 삶이란 당치 않은 것이지요.  내가 만약 시인이 아니었다면 나같이 감정적이고 선병질적으로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으로 외국의 의사 생활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p.169)  

 

36년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노시인과 젊은 음악인은 서로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가끔 가장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대상에서 아주 비슷한 동질감을 발견하곤 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발 다가서지 않으면 그 거리는 세상 어느 것보다 멀게 느껴지지만 조용히 손만 뻗어도 다른 사람의 체온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노시인은 젊은 예술가를 통하여 자신의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젊은 예술가는 노시인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자로서의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삶의 풍요라는 것도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친구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넋두리도, 빛바랜 이야기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한 번도,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죽음, 삶, 친구들, 고향, 부모님, 어린 시절, 이런 소재나 시어들이 나이 든 사람의 넋두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어떠하든, 어떤 경험을 하고 산 세대의 사람이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는 능력을 선생님은 지니고 계시지요.  선생님의 친구분들과 동료 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외로워졌습니다.  선생님의 문학 이력에 전혀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저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무렵부터 늘 혼자였고, 영향을 주고받을 동료들이 주변에 없었지요.  좋게 본다면 본의 아니게 음악이 독특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런 만큼,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p.181)

 

그들의 편지는 2009년 3월에서 멈춘다.  2007년 8월에 시작하여 2년여의 기간 동안 54통의 편지가 오갔고 2009년 4월 13일에 있었던 고국에서의 만남.  나는 그 이후의 그들의 삶도, 인연의 이어짐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노시인에게도, 젊은 예술가에게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편안함이 생을 다할 때까지 마음 한켠에 머물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비록 서로의 주소를 모른다 해도, 죽는 날이 서로 다르다 해도 마음이 향하는 길엔 주소가 필요치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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