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기출문제집 2 - 대한민국 이십대는 답하라 인생기출문제집 2
박웅현 외 15인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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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획일화, 코드화에 반대한다는 데 있다.  합리적인 원리, 규칙, 질서, 코드 등에 강하게 반발함은 물론 때로는 비틀거나 부숴버린다.  이른바 '해체(deconstruction)'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예술이나 철학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기존의 모든 질서로 인해, 그것에 비판없이 순응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우리 사회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나아가서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가고 있지나 않은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나는 중,고생들의 공부를 돌봐주면서 그런 의문을 강하게 품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경쟁과 줄세우기의 학습방식은 분명 아이들을 기존의 틀에 순응하고 반항하지 못하도록 길들이는 데에는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10대는 한 해에 446명이 자살해 10만 명당 6.5명'에 달하고(2009년) 같은 해 15∼19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0.7명에 이르는데 과연 우리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의 기성세대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런 현실이 화가 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병들면 젊은이들이 제일 먼저 열을 내게 되어 있다.  3ㆍ1만세운동에서도, 4ㆍ19혁명에서도 그랬고, 5 ㆍ18민중항쟁에서도 그랬다.  만일 젊은이들이 정의감을 잃고 화를 낼 줄 모르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병든 몸이요 희망이 없는 공동체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해열제와 얼음찜질에 익숙해서 그럴까?"    (P.155)

 

『인생기출문제집』제2권은 연예인, 예술가, 언론인, 종교인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명사들이 우리시대 청춘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질문을 던진다.  정답은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배우 김여진, 광고인 박웅현, 방송인 노홍철, 만화가 최규석, 종교인 김인국, 영화인 양익준, 기자 이진숙, 그리고 빈민운동가 마쓰모토 하지메, 인디고 서원을 운영하는 허아람 등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과 초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하다.  그것이 우리 기성세대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행했던 모든 폭력과 착취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쓴 모든 이들의 속죄의 표현일 수는 있겠다.

 

"우리, 그러니까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충고, 조언도 우리가 할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짐 지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때만 해도 나같이 머리가 별로 좋지 못한 사람도 운 좋게 의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는 친구들도 먹고사는 게 녹록지 않다."    (P.229)

 

나는 중학교 무렵부터 '학교를 그만 다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6남매의 다섯째였던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학교만큼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악착같이 공부하여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마쳤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내 인생을 되돌아 보며 하나 결심한 게 있다.  "배가 불러서 그렇다."는 말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아이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우리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 그 말보다 더 폭력적인 말을 알지 못한다.  육체적으로 배가 부르다고 없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재미와 소명의식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아이에게 그 말을 할 때는 '나도 배고팠으니 너도 배고파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불안을 증폭시키면 시킬수록 비례하여 체제 순응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 기성세대는 현실의 냉혹함을 과장하여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 없는 재능을 쥐어짜는 느낌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아이가 다 성장하여 웬만큼 밥벌이를 할 때 쓰게 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잔혹할 정도로 냉정하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감히 모험을 시도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걸린 셈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은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종, 국적을 막론하고 전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한계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러분 중에도 혹시 먼저 포기하고 물러서는 분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정하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나의 이야기를 읽었다면 차별, 한계, 제약 등이 얼마나 볼품없는 껍데기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껍데기들에게 순순히 당신의 알맹이를 내어주지 마십시오.  과감히 그것들을 제치고 나와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직 나만이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라면 당신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P.328)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 중에는 가상현실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서서히 파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소위 '게임폐인'이 그렇고, '은둔형 외톨이'가 그렇고, 공부만 하는 지독한 '공부벌레'가 그렇다.  우리 기성세대가 그들을 탈출구 없는 화마 속에 그들을 가두고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척한다.  한 국가의 미래는 반항하는자의 열정에 의존하며, 각기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하며, 꿈꾸는 자의 자유에 의존한다.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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