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봄날씨처럼 포근한 하루를 맘껏 즐겼다.

지난 연말연시의 혹독했던 추위도 그저 옛말이 된 듯, 이대로 봄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즘 부쩍 독서에 열을 올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농을 자주 듣게 된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하며 살짝 말꼬리를 흐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해 목표가 뭐길래 그렇게 책만 파는 거야?'하고 직설적으로 묻는 경우도 있다.  어느새 우리는 '독서란 큰 맘을 먹어야만 가능한 행위'쯤으로 인식하고 있음이다.  책이란 언제나 곁에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임에도 말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책에 대한 두려움만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는 늘 그렇듯 마을 뒷산을 올랐다.  몇 년을 한결같이 올랐던 산인데 나는 단 하루도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어떤 날은 기온은 비슷한데 달이 뜨지 않았고, 어떤 날은 지난 해 태풍 볼라벤에 쓰러진 나무 밑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며 달아나는 청설모에 자지러지도록 놀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푸슬푸슬 눈이 날리기도 하고...  요즘은 내가 집을 나서는 아침 여섯 시에도 어둠이 가시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운동을 하고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먼 산마루가 청자색으로 변한다.  그 어슴푸레한 여명에 비친 능선의 실루엣은 마치 카펫의 올처럼 나무들이 보송보송하다.

 

내가 운동을 하는 시각에 매일 만나는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은 제법 날씨가 풀려서인지 지난 가을에 보고 겨우내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간간이 만났지 뭔가.  반갑다 못해 웃음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통통하게 살을 찌운 모습들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묻는 통에 그저 '잘 지낸다'는 대답이 고작이었지만 그 외에 달리 뭔 말이 필요할까?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어도 사는 모습이야 거기서 거기인 것을.

 

저녁에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일주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가 없다.  요즘은 가끔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아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야유회라도 가고 싶은데 서로가 편한 시간을 맞춘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자랄 때와는 다르게 요즘 학생들은 바빠도 너무 바쁘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다.  그래서야 어디 그게 폭력이고 고문이지 학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내가 '레미제라블'을 한 번 보라고 권했는데 나 역시 여직 못 보고 있다.  '봐야지, 봐야지'하며 미루다가 그만 시기를 넘긴 것이다.  그만한 시간이야 내려고 맘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혼자 영화관을 찾는 것도 쑥스럽고,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저녁이면 밤공기 마시며 외출하는 것보다 이불 속이 마냥 그리운 탓에 나는 아내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후회투성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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