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라이프 - 손으로 만드는 기쁨, 자연에서 누리는 평화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지음, 이한중 옮김, 피터 포브스 사진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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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기 개발에 많은 돈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인 이 위선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위선'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에 이르는 첫 단계인,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경계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대가이기도 하다."    (P.170)

 

둘째형은 손재주가 많은 편이었다.  언젠가(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을 것이다) 겨울에 형은 내게 나무로 스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형과는 다르게 손재주라고는 전혀 없었던 나는 형이 하자는 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가 살던 강원도에는 11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여 3월까지 녹지 않았는데 활동적이었던 형은 긴 겨울 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못내 갑갑했던 모양이다.  형과 나는 톱과 낫을 들고 눈밭을 헤맨 끝에 어른 팔뚝보다 굵은 물푸레나무 두 그루를 잘라 산을 내려왔다.  눈 쌓인 산을 헤매느라 신발과 양말은 속까지 다 젖었고, 허술한 목장갑도 매한가지였다.

 

꽁꽁 언 두 손과 발을 녹이는 동안 우리는 엄마와 누나의 잔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베어 온 나무를 어떻게 다듬을 지 궁리하느라 건성으로 대답만 '응,응'하였다.  그렇게 손을 녹인 후, 앞집에서 대패를 빌려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젖은 나무를 다듬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더구나 켜지도 않은 원형의 나무를 송판처럼 얇게, 그리고 면과 두께를 고르고 일정하게 하기란 대패질에 서툰 우리에게는 무리다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쉬지도 않고 온 종일 매달려 앞이 둥근 판재를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하였다.  다음은 이제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말려서 앞부분을 둥글게 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깎은 나무를 빛이 들지 않는 광에 며칠을 두어 제법 말랐다 싶었을 때 장작불 위에서 나무를 구으면서 앞을 휘느라 진땀을 흘렸다.

 

생각보다 모양새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였다.  우리가 만든 나무 스키에 신발을 묶을 끈을 고정하는 것으로 모든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형과 나는 그렇게 만든 스키와 함께 폴대로 쓸 바지랑대를 몰래 들고 집을 나와 뒷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스키는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박닥면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까닭이었다.  우리는 맥없이 산을 내려와 사포로 면을 다듬고 그 위에 양초를 수차례 발라 면에 광택을 냈다.  우리는 그 해 겨우내 바지랑대가 다 닳도록 스키를 타며 놀았다.

 

형은 그 후에도 외발 썰매며, 쇠구슬을 박은 팽이며 갖가지 놀잇감을 직접 만들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떤 일에 그때처럼 집중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워했던 적이 없었던 듯하다.  형과 나는 벌써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야 했던 그 때에 비하면 세상은 분명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전보다 더 공허해졌고 뭔가 근본에서 멀어진 것 같고,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때에 기계문명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A Handmade Life)를 쓴 윌리엄 코퍼스웨이트(William Coperthwaite)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는 메인 주 북부 해안에 있는 농가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해 온 교사이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작가다. 소로, 간디, 디킨슨, 니어링 부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고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 속에서 땅에 사는 모든 생명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하나에 역사와 땀과 애정이 깃든 물건을 사용하고, 동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땔감을 만들고 풀을 베고, 배를 저어가서 장을 보아 오고, 자신이 살 집은 손수 짓는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코퍼스웨이트는 한 개인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기계문명의 편의와 편리만 좇아 근원적인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 교육의 의미와 직업, 검소함과 배려 등 우리가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가치있는 방식에서 너무나 멀리 와버렸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그런 방식을 까맣게 잊은 채, 자식들에게,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 삶의 고통과 폭력적 자기 착취의 방식만 전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자가 원시적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삶을 디자인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디자인하며, 바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명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잊지 않는 삶, 그것은 꿈도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졌다.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탓일까?

 

"오랜 세월 동안 비폭력의 삶을 살고자 한 사람들은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주의자'나 '순수주의자' 혹은 '완벽주의자'나 '이상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더 큰 포부를 품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비폭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해주거나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한번 얹어주는 일이다.  온전한 삶이란 것이 영원히 손에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P.162)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지만,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작가의 주장이 명확해진다.  1.삶을 디자인하다, 2.아름다움, 새로운 시선, 3.일과 밥벌이의 즐거움, 4.배움과 가르침, 5.비폭력, 정중한 혁명, 6.자발적인 가난함, 7.자연을 닮은 소박한 삶, 8.평생 작업을 찾아서.  작가가 말하는 '디자인'은 물건의 형태가 가지는 기능성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행위도 포함하고 있다.  즉 디자인은 사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태도 및 삶의 방식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디자인에 우리의 노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핸드메이드'는 단순히 물건을 직접 만든다는 뜻을 넘어 내 손으로 만드는 인생, 내 손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경험하는 모든 행위는 내 가족과 이웃과 전 인류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사는 지구 전체의 모든 생명을 착취하거나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만 살 수만 있다면 삶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도 그런 삶을 배우고 자신의 삶을 즐길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형과 함께 나누었던 경험을 중년이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하듯 아름다운 기억은 오래도록 그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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