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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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다'는 말은 2인칭의 평가인 동시에 1인칭의 결심이다.  그렇게 구분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결속과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현대인이 점점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피상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하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들이 강남대로를 어깨를 부딪히며 걷고 있을 때,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어쩌면 그림자가 사람들을 끌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곁에 나와 다른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는 느낌,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의 푸근함, 내가 아니면 그가(또는 그녀가) 내가 지닌 불안감을 날려줄 것이라는 믿음, 동시대의 잔혹함과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은 거울 속의 나에게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가 아닌 나이고자 하는 노력은 너를 위한 작은 배려요, 오직 '나'들만 가득한 망망대해를 향해 내가 보내는 구조신호다.  그러므로 나는 '너'라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그를(또는 그녀를) 만나면 반갑다.  이 책의 저자인 배우 최강희는 그런 의미에서 누구 스럽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인기를 등에 업고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책을 발간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사실 좀 구질구질하고 구차스럽지 않은가.  맘에 안 들면 안 읽으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연예인이 쓴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나 최강희의 책은 다르다.  그녀는 나와 다른, 또는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확실히 '너'라고 인정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그녀가 낸 이 책(포토 에세이)을 읽고 알았다.

 

"기분이나 감정엔/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아.//감정을 끊임없이 되새겨내야 하는 게/내 일이긴 하지만.//웃음엔,감정엔,기분엔 분명히/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그러니까,모두./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하기로...//     (P.185)

 

4차원 소녀, 최강동안, 강짱, 골수천사 등 참으로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그 무엇도 그녀 자신을 오롯이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배우.  언제부턴가 '아, 이거 너무 좋아!'라는 게 없어져서 무엇을 듣고 보아도 감동이 없고 무감각해졌단다.  그때 김C가 준 시규어 로스(Siguar Ros)의 DVD를 보고 아이슬란드에 흠뻑 빠졌었단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입은 아이슬란드의 전통 스웨터부터 색이며 자연이며, 모든 게 그녀를 매료시켰단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슬란드로 떠났고 꿈만 같은 5일 동안 책 한 권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이 책에는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사진과 그녀의 생각을 담은 짧은 글들이 빼곡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글과 사진들이 마치 살아서 떼구르르 구를 것만 같다.

 

"매일 매일/어떠한 결심을 만들고,/지우고,/또 결심을 하고.//미워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또 눈물을 닦고,/애써 웃는 모습을 지어보이고...//또 다른 결심을 하고.//그치만 언제나 휘청이는 쪽은/대단한 결심을 해대는 쪽인 걸.//어쩌면/무엇도 결심하지 않는 쪽이//어쩌면/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쪽이//어쩌면/마음을 수없이 열고 닫아/삐거덕거릴 바에야/그대로 방치하는 쪽이...//    (P.198 "놓아주기")

 

때론 잡으려 하면 무너지는 것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고, 우리는 서로의 그것들을 바라봐줄 차례라고 그녀는 말했다.   지난 2007년 백혈병 환자를 위해 골수를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기부천사'라고 불리는 그녀, 이 책의 수익금 전액도 미혼모 시설과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내가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너를 약속한 시간에 만나고 싶어서야."    (P.190)

 

그녀에게선 삶에 있어서는 누구나 초보인 숙명적인 아픔이 전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화~'라고 부르자.  다시 한 번 "화~"라고 외치면 화한 박하향이 나지?  가벼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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