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마음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저만의 색깔이 있다.

나는 김려령 작가의 소설 『가시고백』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어린 시절의 마음은 어떤 색이었을까?  아마 윤기 없는 회색에 가까웠지 싶다.  그 시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랬을 듯도 싶고.  유난히 튀는 색도 없고, 기세에 눌려 숨겨진 색도 없는, 그 시절 아이들의 마음은 비슷비슷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온통 무채색 일색이었구나 싶다.  하기에 콩나물 시루처럼 복작거리는 아이들을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리 쉽게 길러낼 수 있었으리라.

 

요즘 아이들의 마음은 누구 한 사람도 서로를 닮지 않은 원색에 가깝다.

그러므로 같은 나이의 아이들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어렸을 적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색깔의 마음을 가졌으므로 속내를 감추어도 눈빛이나 행동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각자의 마음을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면 알아채기는커녕 감도 잡을 수 없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양한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 다채롭고 화려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만 자신의 색깔만 고집한다면 한 폭의 좋은 그림이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는 원색의 마음을 가진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 한켠을 내어 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  타고난 손놀림으로 자기도 모르게 도둑질을 하는 주인공 '해일'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일곱 살 이후로 줄곧 도둑질을 해 온 해일은 습관적으로 굳어진 도벽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 기회를 좀체 얻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워 한다.  도둑질을 할 때마다 독백과 같은 일기를 쓰며 자신이 도둑임을 시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해일은 어머니에게 변명삼아 내뱉었던 '유정란에서 병아리 부화시키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

 

해일이 제주도 농장에서 야생 토종닭 유정란을 구해 생선가게에서 얻은 스티로폼 상자에서 부화시킨 병아리들은 작품 속에서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사는 인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새아빠와 사는 지란, 감성과 이성이 조화롭지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진오, 초등학교부터 줄곧 반장을 했다는 다영, 졸업식 날 조폭을 동원한 제자에게 맞고 마음의 문을 닫은 담임 선생님.

 

담임 선생님은 해일의 미니홈피에 올린 병아리 사진을 보기 위해 일촌을 맺고, 지란과 진오는 병아리를 보기 위해 해일의 집을 방문한다.  그 이후 급격히 친해진 해일과 진오, 지란은 지란의 친아빠 집에 몰래 들러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지란의 복수를 함께 한 셈이다.  그 자리에서도 해일은 도벽을 참지 못하고 넷북을 훔친다.  그 모습을 거울을 통하여 모두 보았던 진오는 해일에게 낙담한다.  지란의 친아빠가 사는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해일의 아빠가 어느 날 지란의 친아빠가 버린 가구를 집으로 가져오는데 거기에는 자신들이 했던 낙서가 적혀있다.  해일은 그 우연의 일치에 당황하며 진오와 지란에게 자신이 도둑임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해일이 지란의 사물함에서 전자수첩을 훔치는 것을 보았음에도 입을 다물고 있던 다영을 포함하여 진오, 지란에게 해일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의 일기에 적는 일방적인 시인이 아니라, 조금은 두렵고 낯선 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자신이 도둑임을 밝히고 잘못을 빈다.  마음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는 작업이다.  지란은 자신의 친아빠 집에서 해일이 훔친 넷북을 돌려 받고 그곳에 저장된 자신의 사진을 보며 친아빠에 대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뀐다.  그리고 어색했던 새아빠와도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들 주인공과 더불어 해일과는 열두 살 차이가 나는 해일의 형 해철과 해일의 담임 선생님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해일의 감정 변화에 개연성을 입힌다.  흔하디 흔한 성장 소설로 치부될 수도 있는 구성이지만 담임 선생님과 해철을 더함으로써 세대 간의 조화도 꾀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 색깔로 이 시대를 화폭으로 삼아 한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그림에 내 몫이 얼마나 되느냐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완성된 그림이 얼마나 조화로운가에 따라 삶은 완성되는 것인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