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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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흥 또 못 알아 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마누라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면 술이나 얻어 먹을 수 있나…….』

사회란 무엇인가? 아내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딴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리집 이름이어니 한다.    -술 권하는 사회 中에서-

 

위에서 인용한 글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일부이다.  일제 강점기의 부조리한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절망을 그린 이 작품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은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뭔 얘기냐고?  맞는 말이다.  다들 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제 더이상 술을 권하지 않는다.  권하여도 취하도록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어떤가?  빚 말이다.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빚을 권한다면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나는 주식투자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야말로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주식 문외한이었다.  '적은 돈으로 그저 배워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투자했던 백오십만 원을 한달 반만에 모두 날렸다.  '경험삼아 한 일이니 그만 잊고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마음도 있었으나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나 자신이 맥없이 당한 듯하여 그대로 물러나기에는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서점에 들러 주식에 관한 책이라면 모조리 사서 읽었다.  새벽 2, 3시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제발 잠 좀 자라'며 핀잔아닌 핀잔을 퍼부었다.

 

근 반 년 정도를 그렇게 책만 읽었다.  그때 읽었던 주식 관련 서적만 해도 줄잡아 200권은 넘지 싶다.  그 후 나는 아내에게 주식투자를 다시 해보겠다며 당당하게 500만 원을 요구했다.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못 미더워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결코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나의 결심에 아내는 마지 못해 돈을 내어 주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주식투자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원금을 돌려주고도 매달 일정액을 아내의 손에 쥐어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2001년에 있었던 미국의 9.11테러와 그 여파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강타했을 때 나는 주식투자를 그만두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아주 작은 징조라도 감지했어야 주식투자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은 조금 씁쓸했지만 미련은 남지 않았다.

 

내가 주식투자에 매달렸던 그 기간 동안 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었다.  소위 '고수'라는 사람들도 만났고, 가진 돈을 몽땅 잃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 중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군산에 살던 한 아줌마인데 남편 몰래 주식을 하다가 큰 돈을 잃고, 그것을 회복하려고 사채를 빌려 투자했으나 그마저도 다 잃고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진 그 분은 유서를 써 놓고 가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을 남겨둔 채 차마 죽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 여인이 막다른 골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두 배, 세 배의 미수금을 제 돈처럼 투자할 수 있도록 배려(?)한 증권사의 꼼수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신용 사업자인 금융기관은 신용 소비자인 개인을 한순간에 채무노예로 만들 수 있다.  금융기법이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은 대부분의 수익을 예대마진에서 취한다.  결국 어떠한 감언이설을 동원하여서라도 대출을 늘려야만 그들의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인 셈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과도한 돈을 대출하였다 한들 은행으로서는 손해볼 장사가 아니다.  채무 불이행의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빚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기보다는 빚을 권하는 사회.  그 중심에는 언론과 국가도 예외일 수 없다.  빚을 통한 레버리지(지렛대)효과를 강조하는 언론, 복지보다는 빚을 통하여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국가.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에게도 맘 놓고 기댈 수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신용의 증가는 금융회사와 기업에는 크게 이익이 되지만 소비자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소비자신용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소비자의 파산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소비자신용의 증가를 통해서 금융회사와 기업이 수익을 얻고 국가 경제가 성장하였다면 그로 인한 부담도 소비자만이 아니라 금융회사, 기업, 사회 전체가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소비자신용의 증가에 따른 이익은 금융회사, 기업, 국가 모두가 누리면서 그에 따른 손해는 소비자들만 부담하라고 하는 매우 이상한 논리가 판치고 있다."    (P.123)

 

이 책에서는 가계부채 1000조 시대를 살고 있는 가난한 서민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모순을 저자는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대출을 권장하고 그 놀음에 속아 평생 빚만 갚으며 살게 만드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우리 모두가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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