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예보되어 있는 주일!
밖에는 수상한 바람이 '솨,솨' 소리를 내며 마른 잎을 훑고 지나간다.
이런 날은 알 수 없는 우울과 새삼스러운 추억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촉촉하게 젖어오곤 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양도 정리되지 않은 우울이 얕은 빨랫줄에 걸려 있다.
그 위로 심술궂은 바람이 그 형태의 우울로 미이라를 만들려는 듯 잔혹하게 습기를 걷어낸다.
나는 고든 라이트후트(Gordon Lightfoot)의 "Second cup of coffee"를 듣고 있다.
I'm on my second cup of coffee and I still can't face the day
I'm thinking of the lady who got lost along the way
And if I don't stop this trembling hand from reaching for the phone
I'll be reachin' for the bottle, Lord, before this day is done
I'm on my second cup of coffee and I still can't face the day
The room was filled with laughs as we danced the night away
But my sleep was filled with dreaming of the wrongs that I had done
And the gentle sweet reminder of a daughter and a son
이런 노래를 들으면 슬픔은 언제나 물질로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즉, 보이지 않는 슬픔이 어딘가로부터 날아 와
먼저 내 얼굴의 가장 높은 부분인 코를 찡하고 달구면
전이된 슬픔은 코와 가장 가까운 눈물샘을 자극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슬픔은 비로소 맑은 액체의 눈물로 체화한다.
이런 과정은 열이나 전기의 전도현상과 흡사하다.
이렇게 보건데 슬픔을 어찌 상상 속의 개념이라고 단정할 수 있으랴.
나는 슬픔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믿기로 했다.
탄생에서부터 수동적인 인간은
비록 그 행동의 8할이 수동성을 띤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 가을의 시간 속으로
누군가에 의해 내동댕이쳐졌다고 생각지 않으려 한다.
나는 슬픔이 짙게 깔린 가을의 시간을 향해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 들어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