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부자경제학 - 『사기』 화식열전 Wisdom Classic 4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사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도 없고, 부자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마치 십수년간의 면벽수행을 거쳐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또는 큰 실패를 겪고 낙담하여 자포자기적 심정에 빠졌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다 아니다.  나는 그저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할 때마다 자기계발 코너에서 자주 보이는 '부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에 습관처럼 시선이 닿곤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의도되지 않은 현상으로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습득된 세뇌라고 여겨진다.

 

게다가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 4년 내내 나는 수학 문제만 풀은 듯한 느낌인데, 이러한 배경에는 어떤 원리나 철학보다는 수학적 계산을 통하여 보여지는 명쾌함을 추구하는 서양 경제학자들의 선호가 경제 이론이나 모델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났고, 그 세월에 비례하여 수많은 이론과 모델들이 쏟아졌지만 세계 경제는 정체되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이론은 뭔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흐름에도 오직 중국만은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저자는 지금껏 배워온 서구의 경제이론이 아닌 사기열전의 69번째 편인 '화식열전'에서 그 답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건 그 원류가 존재하고, 그것에서 분파되고 세분화 된 각종 이론이 존재할 뿐, 혁명적 원리가 새롭게 등장하여 기존의 본원적 이론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의 근원적 이론을 살펴보고 이것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 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더구나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이 점차 낮아지는 반면 세계경제의 빅2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인접국 중국은 우리로서도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2012년 연초에 새해 계획으로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자'는 결심을 했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1월 한 달은 그럭저럭 지켜지는 듯했다.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책은 서양의 고전인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와 함께 동양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였다. 나는 서해문집이 출판한 사기 1권 <패자의 탄생>, 제2권 < 난세의 영웅들>, 제3권 <진시황의 천하>를 1월 한 달에 읽고는 지쳐 나가떨어졌다.  [사기] 130권([열전], [본기], [세가], [서], [표])에 흩어져 있는 역사 사건과 인물들을 시대 순으로 재구성하여 독자가 읽기 쉽도록 하였다고는 하나 그렇게 만만히 볼 책은 분명 아니었다.  한동안 '사기'는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지난 달에 <사기열전>을 읽었다.  그 중 내가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자객열전'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부자'라는 단어와 '사기'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이지 '화식열전'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비롯된 서구의 경제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반면 동양의 이론이나 사상은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이제서야 조금씩 주목을 받는 것 또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서양의 제 이론에 비해 동양의 그것이 결코 뒤쳐지지 않음을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2000년 전에 씌어진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의 경제, 경영서의 논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제자백가의 반열에 오른 상가(商家)의 핵심 사상은 부민부국을 치국평천하의 요체로 삼는 데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 중농(重農)이 아닌 중상(重商)을 택한다.  상가의 이론은 관중에게서 비롯되었지만, 공자의 제자로서 상가의 이론을 몸소 실천하여 당대 최고의 부자로 명성을 떨쳤던 자공에 이르러 세상에 드러났고, 이를 높게 평가한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를 다룬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가운데 절반을 자공의 사적으로 채웠다.

 

그러나 '가족을 먹이지 못하면 거짓 군자'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면이 있던 상가의 흐름은 유학을 유일한 관학(官學)으로 삼았던 한대(漢代)의 정책 탓으로 빛이 바랬다. 유학을 유일한 관학(官學)으로 못박는 한대(漢代)의 정책 탓에 사마천의 업적은 이내 빛이 바랬다.  이후의 역대 왕조도 중상주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중국의 실생활에는 여러 왕조의 흥망에도 불구하고 중국 10대 상방과 함께 도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好利知性)이라는 상가의 논리는 유교가 지배했던 동양의 여러 나라에 있어 각광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몇몇 실학자들이 중상주의를 주장한 바는 있지만 그렇다고 중상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명분과 허세를 중시했던 유교의 논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시하는 상가의 현실적 이론에 의해 반박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10배 부유하면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1만 배가 되면 그의 하인 노릇을 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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