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무실 주변에는 철쭉이 한창이다.

언젠가 아들녀석이 그 꽃을 가리키며 이름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철쭉이라고 답하자 진달래와 어떻게 다르냐고 재차 물었다.  일순 말문이 막혔던 나는 진달래는 색깔이 연하고 철쭉은 그보다 진하다고 얼버무렸었다.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고 당치도 않은 대답이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그만큼 친숙한 것에는 그 구분을 말로써 설명하기 어렵다.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마을의 산들에는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수줍은 분홍빛이 온 산에 번질 즈음이면 배고픈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에 올랐다.  막 피어나는 꽃잎을 한줌 따서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향기가 허기를 달래주곤 했다.  먹을 수 없는 꽃인 ‘철쭉’에 대하여,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꽃’을 우리는 '참꽃'이라 불렀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은 '참'이었고 그렇지 못한 것은 '거짓'이 되는 시절이었다.  '참머루'는 먹을 수 있는 것, '개머루'는 먹지 못하는 것, 그런 식이었다.

 

공부도, 놀이도 그랬던 듯하다.

즐겁고 재밌는 것은 '참'이요, 그렇지 못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렇듯 가장 밀접하고 현실적인 기준으로 우리는 참과 거짓을 구분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도 따라 성장하면서 참과 거짓의 가장 가깝고도 명확했던 기준은 멀고 모호한 것으로 변했다.  지금은 현실로부터 이만큼 멀어진 그 무엇이 되었다.

 

손끝만 스쳐도 속이 확확 달아오르던 사랑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던 그때의 사랑도, 잠시의 이별도 이별로서 인식할 수 있었던 사랑과 이별의 명확한 기준도 이제는 그 경계마저 희미한 그 무엇이 되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스쳐가는 시간에 따라 현실로부터 저만치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