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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가령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학생들로부터 자신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 이유는 나로서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차라리 평생 줌을 추면서 살고 싶다거나 돈을 왕창 벌고 싶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오히려 없던 힘도 불끈 솟았을런지도 모른다. 학문이건, 예술이건, 그도 아니면 운동이건 간에 '욕망'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것도 부질없는 욕망이어서는 안된다. 시대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욕망을 부질없는 욕망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공무원이라는 꿈은 어쩌면 부질없는 욕망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번지점프를 뛰는 것과 같습니다. 뛰어내리기 전에는 엄청난 공포가 밀려오지만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뛰어내리는 순간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새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저도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결정한 뒤에는 내 의지대로 삶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손미나 작가가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우리가 인생의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때 떨어지지 않으려 조심하면 할수록 몸은 굳어지고 다리는 더욱 후들거리는 반면 '떨어지면 다시 기어오르면 돼.'라고 편하게 마음먹는 순간, 오히려 몸과 마음은 유연해지고 불가능해 보였던 그 길도 가볍게 건널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KBS의 간판 아나운서였던 작가가 돌연 휴직을 하고 물설고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데서 살아 볼 결심을 하기까지 그녀라고 왜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욕심내는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내 손 안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그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유의 품에 포근히 안겨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으리라.
나는 사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책을 내는 사람을 그닥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런 책에는 진실을 느낄 수도, 어떤 감동을 맛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유명 가수가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홍보용으로, 어느 정치인이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지금 종사하는 직업을 기반으로 또 다른 직업을 기웃대는 그런 사람의 글은 주변의 평이 좋다고 하더라도 잘 읽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을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손미나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놓고 떠난 듯했다. 1년간의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가 누렸던 자유의 행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나운서라는 또 다른 직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렇게 풀어놓지 못했으리라.
"미스터 디엥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고 고난의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그리고 그가 내게 그랬듯, 나도 언젠가 꿈을 가진 젊은이의 수호천사가 돼주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P.47)
아나운서 손미나가 아닌, 작가 손미나의 글을 읽을 수 있었기에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움켜쥐었던 손을 풀고 손사래로 흩어지는 모래를 보기 전에는 바람을 잡을 수 없다. 그녀는 비로소 바람과 같은 자유를 품었다.